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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심리를 고려할 것인가, 기업가치를 높일 것인가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인수·합병이 진행되면 표적 기업의 이해 당사자들은 급격한 변화에 불안을 느끼면서 반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표적 기업의 주주 입장에서는 프리미엄을 받고 주식을 팔 수 있으므로 인수·합병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경제 외적인 이유로 새로운 매수 세력에 저항감을 갖기도 한다. 창업 가문 주주의 입장에서는 회사에 대한 정서적인 애착이 강해 이를 거부할 수 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기업이 효율화하고 경쟁력이 높아져야 일자리를 궁극적으로 지킬 수 있으므로 인수·합병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인수·합병 이후 기업 가치를 높이는 과정에서 구조 조정이 진행될 수 있으므로 인수·합병에 반대하기도 한다. 경영자의 입장은 대체로 반대 일색이다.

인수·합병 이후 비효율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세력 중에는 사모 펀드와 같은 금융 자본의 위세가 뚜렷하다.

이런 점도 인수·합병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이들 금융 자본은 그동안의 산업 자본가와 달리 회사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투자한 회사를 그저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간주할 뿐이다. 이러한 금융 자본 주주의 내 혹한(혹은 합리적인) 특성이 기업 구성원들에게 더 심한 불안감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수·합병에 대한 사회 심리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그러나 금융경제학의 기본 입장은 인수·합병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 지배권 시장을 만들어 경영자에게 긴장감을 조성함으로써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은 세계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므로, 기업이 과거의 온정주의에서 벗어나 효율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인수·합병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기업 지배 구조 논쟁 ●

오늘날 주식회사를 둘러싸고 기업 지배 구조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주의 권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업 지배 구조 개혁이 이뤄지면서 이 논쟁이 가열되었다.

이 논쟁은 산업화 과정을 주도한 재벌의 존속 여부와도 관련되어 있어 매우 예민한 문제다. 국내에서 영미식 주주 주권론에 대한 비판은 노동계에서 먼저 제기 했다. 외환 위기 이후 새롭게 등장한 주주는 기존의 산업 자본가와 특성이 전혀 다른, 각종 펀드로 대표되는 외국계 금융 자본이었다. 이들 금융 자본 주주는 속성상 재무적인 지표에만 주로 관심을 갖는 단기 투자자가 적지 않았으므로, 이들이 기업 지배 구조에서 높은 발언권을 가진다거나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기존 주주와 경영자를 갈아 치우는 것은 노동자와 지역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것은 지배권을 계속 지키고 싶은 재벌 창업 가문의 이해관계와 일자리의 안정을 유지하고 싶은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일치하는 지점이었으므로 반 외국 자본의 정서는 한층 고조되었다.

 

당연히 노동장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이 장기적으로 존속해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노동자와 경영자는 기업의 이해관계자 중에서 가장 장기적인 시야를 갖고 기업의 발전과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 또 기업의 핵심 경쟁력은 특수한 무형 자산(구성원의 노력에 의한 차별화된 기술, 노하우, 명성, 조직화의 방법 등)을 얼마나 많이 축적했는가에 의해 결졍되는데, 이것도 노동자와 노동자 중에서 출세한 경영자의 헌신에 달려 있다. 따라서 기업은 결코 주주의 소유물일 수 없고 노동자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소유물이라는 주장이 성립된다. 이러한 노동자 주권론에 대해 금융 자본 주주들의 반론은 강력하다. 안정과 존속을 중시하는 경영자와 노동자 간의 결탁 관계로 인해 기업이 수익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규모 확장에 주력함으로써 기업에 핵심적 안정 자본을 공급한 주주들의 이익이 훼손되었다는 비판이다. 또 주주의 압력으로 상시적으로 구조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결국 기업에 돈을 빌려준 금융 기관이 부실해지고, 마침내 위기가 발생하며 그 부담을 납세자가 짊어져야 할 뿐 아니라 국민 경제가 도탄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따라서 금융 자본 주주들은 주주 주권이 확립되어야 기업의 수익성과 위기 대응력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주주는 기업에 핵심적 안정 자본을 공급한 주체이고 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가장 후순위에 놓여 있으므로 기업 지배 구조에서 우월적 지위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 두 개의 자본주의 ◆

그런데 주주 주권은 영미형 자본주의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자리 잡았고, 노동자 주권은 유럽 대륙의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구현되었다. 따라서 두개의 자본주의가 경쟁한다는 관점도 성립한다. 흔희 주주 주권을 따르는 미국식 시장경제를 가리켜 앵글로·색슨형, 노동자 주권을 중시하는 독일식을 라인(Rhein) 강에 빗대어 라인형이라 부른다.

앵글로·색슨형은 자유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 모델이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의해 개개인의  성과를 평가하며 개개인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진다는 신자유주의가 경제 운용의 기본 이념이다. 산업 구조는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기술 산업 위주다. 첨단 기술 산업은 생명 주기가 짧아 변화를 신속하게 수용해야 하므로 구조 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자본 시장이 발전해 주주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기업 지배 구조가 정착했고, 적대적 인수·합병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경영자가 수시로 교체되며 노동자의 정리 해고가 자유롭다.

 

반면 라인형은 시장의 효율과 사회적 연대를 결합한 모델로,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가 경제 운용의 기본 이념이다. 중간 기술(middle-tech)의 전통적 제조업이 핵심 산업인데, 이들은 특성상 생명 주기가 상대적으로 길고 현장을 중심으로 한 기업 특수 자산의 지속적인 축적이 중요하므로 이를 위한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특히 안정적으로 자금 공급이 가능하도록 은행을 통한 간접 금융이 금융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자본과 노동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기업 지배구조가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경영자들은 수시로 교체되지 않으며 노조와 장기적인 협조 관계흘 유지하면서 기술 축적에 전력을 경주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식 자본주의와 독일식 자본주의는 많이 다르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금융에 있다. 분권화의 전통이 강한 미국은 금융과 실물이 각각 별개의 영역으로서 독자 논리에 의해 구축되었다.

반면 독일은 금융과 실물을 상호 연계 지어 금융은 실물을 지원하는 부분으로서 설정되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금융의 유동성을 극히 중시하고 독일에서는 금융의 헌신성을 중시하는 전통이 마련되었다.

 

금융에 대한 이러한 상이한 시각은 금융 시스템의 차이로 이어졌다. 미국은 자본 시장이 금융시스템의 중심을 이루었고, 독일은 은행이 금융 시스템의 핵심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자본 시장이 기업을 외부적으로 감시하면서 기업에 단기적인 수익성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은행이 기업과 내부 정보를 일정 수준 공유하면서 네트워크 관계를 맺고 준내부자 혹은 전략적 투자자로서 행동함으로써 기업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금융적 조건의 차이는 기업 활동의 차이로 이어졌다. 경영 활동의 차이로도 이어졌다. 경영을 위임받은 경영자들은 미국과 독일에서 각기 상이하게 행동한다. 미국 경영자들은 주주 이익을 최우선 한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통해 경영자의 수시 교체가 가능하므로 경영자는 주주 이익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반면 독일 경영자는 주주의 압력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주주가 특 특정 다수로 구성되었다기보다는 사업상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과 금융 기관 들인 데다 기업 지배 구조에서 종업원의 발언권이 강력하다. 그러므로 경영자는 주주의 단기적 수익성에 매몰될 이유가 없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상이한 욕구를 절충하고 조정하는 데서 자신의 역할을 찾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장기적 안목으로 기업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을 키워 가는 것이 가능하다.

 

경영자와 노동자를 규율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경영자에게 파격적인 수준으로 스톡옵션을 제공함으로써 경영자가 주주 이익을 우선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다 보니 경영자는 필요에 따라 노조를 무력화하거나 정리 해고를 단행하기도 한다. 반면 독일에서는 경영자를 주주 이익을 관리하는 대리자로 간주하기보다는 종업원의 대표로서의 이해한다. 또 경영자 주도로 노사 안정과 고용 안정을 기함으로써 현장 인력이 꾸준히 ㄹ생산성과 기술력을 키워 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조건의 차이로 인해 미국과 독일은 강성을 발휘하는 산업 영역이 각기 다르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생명 주기가 짧고 인력 이동이 빈번한 IT 등 첨단 산업에서 우위를 보이는 반면, 독일은 생명 주기가 비교적 길고 꾸준하게 핵심 역량을 축적해야 하는 중간 기술의 제조업에서 강성을 발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시스템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수용 능력이 우월하고, 독일은 총제적인 합의를 요하는 시스템으로 변화에 대한 수용이 늦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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