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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을 뒤집어놓은 영국의 탈출 하드 브렉시트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신조어

 

2016년 6월 23일, 찬성 52%와 반대 48%로 브렉시트를 확정한 영국의 국민투표가 발표되자 전세계의 주가가 요동쳤습니다. 미국 뉴욕 증시는 일제히 3~4%의 급락세로 마감했고 일본의 주가는 폭락했으며 엔화 가치는 급등했습니다. 한국 -3.09%, 홍콩 -2.92%, 중국 -1.30%로 주가가 하락했습니다.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하루에만 전세계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2조 800억원달러(약 2,440조원)가 사라졌습니다.

브렉시트(Brexit)는 '영국(Britain)' 과 '탈출(Exit)'로 만든 합성어입니다. 영국이 28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다는 애기입니다. 대체 브렉시트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세계경제가 들썩들썩했을까? 그전에 EU의 역사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성장을 부러워했던 유럽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하나의 유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1951년 EU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로 발전했습니다.

 

♣ 유럽연합(EU) 출범 연대표 ♣

1951.4 독일과 프랑스 주도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출범

1958.1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6개국

           유럽경제공동체(EEC) 창설

1961.8  영국의 EEC 가입 요청,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거부로 무산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유럽

1967.7  원자력공동체(Euratom)를 통합한 경제적 통합체 유럽공동체(EC)출범

1967.11 영국의 EC 가입 요청,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다시 거부

1973.1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퇴진 이후 영국은 아일랜드, 덴마크등과 함께 EC가입 

1975.6  영국 EC 가입 2년 만에 EC 잔류 여부 국민투표 실시, 투표결과 EC 잔류

1985.6  EC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인력 이동을 보장하는 셩겐조약(Schengen agreement) 체결

1991. 12 EC 주요국들이 경제·화페 통합, 공동 외교 안보정책 등을 담은 마스트리히트조약

            (유럽연합조약)체결

1992. 2 영국, 유럽 단일 통화에 참여하지 않는 권리인 옵트 아웃(Opt-Out)확보

1993.11 마스트리히트조약 발효, 유럽연합(EU)출범 

1999.1 유럽경제통화동맹 출범과 함께 유럽연합 공동 화페 유로화 사용 시범 시작

2002.1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 전면 시행, 영국은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음

 

유럽 대통합 과정을 살펴보면 영국은 ECSC의 초창기는 물론 EEC까지 이르는 과정에서도 발을 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국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인 '영예로운 고립(splendid isolation)' 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명칭은 그럴듯하지만 이는 반대로 보면 섬나라인 영국이 유럽 문제에서 한 발 떨어져, 자기들이 필요할 때만 개입하는 것을 비꼬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이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EU 탈퇴) 직전까지 간 데 이어 중동계 난민들을 대거 유입하며 경제적 곤경에 처하자 영국이 브렉시트 카드를 내밀며 EU에서 나가기로 한 것도 이러한 외교정책을 반영한 것입니다.

 

 

 

영국의 이러한 '박쥐 같은' 전략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내 다른 국가들로부터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영국이 자기들의 안보를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될 때만 유럽에 도움을 청한다며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국 연방이나 북유럽, 미국에 무역이 집중돼 있어서 유럽과의 무역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EU가 경제동맹이라는 성격을 뛰어넘어 정치적 통합을 추구하는 '초국가의 성격'을 띠자, 영국에는 국민을 위한 국가라는 정체성이 위협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결국 EU 체제는 사실상 독일과 프랑스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됐습니다.

브렉시트를 촉발한 결정적인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였습니다.

가뜩이나 EU가 프랑스와 독일 주도로 운영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영국은 EU가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PIGS(돼지들)' 로 불리는 포르투칼,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에 거액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자 크게 반발했습니다. 남유럽 국가들을 지원할 돈이 영국 국민들 세금에서 나갔기 때문입니다. 또한 EU의 모든 정책을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좌지우지하는 것도 영국으로서는 큰 불만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동유럽 노동자들의 이민 증가현상도 영국 사람들을 자극했습니다.

영국 역시 과거에 비해 경제사정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 동유럽 이민지들을 받아들였는데, 그들이이 자기들의 돈으로 혜택을 받는 데다 일자리도 빼앗는다는 피해 의식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정서를 파악한 데이비드 캐머린 영국 총리는 2013년 총리 후보 당시 공약으로 "EU 탈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영국 내에 불거지고 있는 EU에 대한 불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EU 내에서 영국의 입장을 강화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고도의 정치 전략이었습니다. 이런 전략에 힘입어 캐머린은 영국총리에 당선됐고 공약대로 국민투표를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브렉시트가 결정됐고 영국 경제 역시 큰 혼란을 겪게 됐습니다. 결국 캐머런 총리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영국인들도 설마 EU 탈퇴가 결정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브렉시트 결정 이후 기쁨보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영국이 지금껏 누려온 금융허브의 자리를 프랑크푸르트, 파리, 아일랜드 등에게 빼앗기지는 않을지, 젊은이들의 유럽 유학이 어려워지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브렉시트 결정 이후 미국 포드 자동차가 영국 공장 내 직원 감원을 검토하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하는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Skype)도 영국 런던사무소를 닫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런 우려는 더 커져만 갔습니다. 국민들의 불안한 여론이 계속되자 캐머런 영국 총리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테레사 메이 총리는 취임 직후 영국의 EU 탈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탈퇴 협상을 서둘지 않을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18년 11월 25일, 브뤼셀에서 열인 EU특별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협의안을 작성하며 마무리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1월 합의안이 부결되며 다시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그리고 합의안 통과를 위해 다시 논의가 시작 됐습니다. 영국을 제외한 EU 지도자들은 영국의 브렉시트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미래를 위한 협상을 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이에 테리사 메이 총리는 EU 회원국의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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