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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경제

스위스의 프라이빗 뱅킹

블랙데블 2023. 1.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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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영화에서 익명성이 강한 돈 애기가 나오면 으레 스위스 은행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영화같은데서 너무 많이 나와서 그런것 같다. 스위스 은행하면 비밀금고에 좋은 쪽으로 나와야 되는데 정치자금이나 사장 회장님들 비자금으로 순겨둔 뭉치돈이 나오는 곳으로 단골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친 소설「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2003) 에도 스위스 은행 지점에 설치된 비밀 금고가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스위치 은행이라고 하면 비밀 계좌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고객 기밀 엄수를 무기로 프라이빗 뱅킹을 키워 낸 것은 작은 은행들이지 USB나 그레디스위스 같은 대형 은행이 아닙니다. 

스위스에서 금융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 프랑스의 부유층들이 정치적, 사회적 혼란으로부터 재산을 지키고자 국경에 인접한 제네바의 금융상에 돈을 맡기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이로 인해 프랑스로부터 스위스로 자금의 엑소더스가 시작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18세기 말에는 픽테(Pictet), 롱바르드 오디에(Lombard Odier Darier Hentsch)와 같이  오늘날까지 명성이 이어지는 프라이빗 뱅크가 제네바의 레만 호숫가에 설립되었습니다.
이처럼 스위스의 금융 입국은 프랑스 자금의 피난처로서 제네바에 프라이빗 뱅킹 클러스터가 형성된 것이 그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 전역으로부터 스위스로 익명의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이 무렵부터 유럽 각국은 개인 소득에 대한 과세,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를 시작했는데, 바로 이때문에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의 부유층은 조세를 회피하기 위해 환전이 쉽고 실명을 은닉할 수 있는 피나너를 찾게 되었습니다. 스위스 은행가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밀번호 계좌(secret numbers account) 제도를 강화해 각국의 자본을 유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스위스이 프라이빗 뱅킹이 융성하게 된 것은 한마디로 비밀번호 계좌 때문입니다.
비밀 계좌는 예금주의 실명이 아니라 번호로 관리되기 때문에 예금주가 누구인지는 은행의 임원급이 아니면 알 수가 없습니다. 원래 은행의 비밀주의는 스위스 민법에 의해 허용되었으나 이후 형법적 처벌 조항을 도입함으로써 극단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원이 예금계좌에 관한 개인 정보를 누설하면, 그것이 스위스 정부에 요청에 의한 것일지라도 범죄로 간주되어 징역을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스위스 비밀 계좌는 어떤 자본이건 일단 스위스의 국경을 넘으면 절대 불가침의 성역으로 보호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편 번호 계좌 제도와 함께 스위스의 금융을 특정짓는 것은 스위스 프랑스입니다.  스위스 프랑은  유로화가 창설된 이후에도 영국의 파운드와 함께 여전히 독자적인 생존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제 자본 시장에서 스위스 프랑은 기채 통화로서 한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스위스 프랑은 어떻게 국제적 지위를 얻게 된 것일까?

스위스 프랑에 대한 신인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는 낮은 금리 덕분입니다. 그러나 금리가 낮다고 무조건 기채 통화로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엔도 저금리로 유명하지만 엔의 가치가 수시로 높아져 채무자 입장에서 샹환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스위스 프랑처럼 국제적 지위를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스위스 프랑이 국제적 신인을 얻는 데는 스위스의 정치적 중립성이 큰 몫을 했습니다.

 

 

 

 


스위스는 사방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16세기 이후 중립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해 왔으며,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1815년 빈 회의에서 정치적 중립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것이 해외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자석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 터지거나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 '유사시 스위스 프랑 매입' 이라는 공식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스위스의 금융 전략은 영국이나 미국 등 강대국읭 패권형 금융 전략과는 크게 다릅니다.
영국는 세계 최강국이던 시절 무역과 금융 간의 연계성을 살려 런던을 세계 무역 금융의 메카로 키웠으며,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 간 이후에는 달러의 역외 금융시장을 유치해 런던의 위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토대로 달러를 세계 기축 통화로 만들고 부단한 혁신을 통해 금융 중심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반면 스위스는 비밀 계좌라는 틈새를 살려 전 세계로부터 부유층의 자금을 끌어들이고, 이를 국제적으로 투자 운용하는 데서 역할 공간을 찾았습니다. 즉 픽테와 같은 소규모 프라이빗 뱅크를 통해 전 세계 자금을 흡입하고, 이 자금을 USB나 크레디스위스 같은 대형 유니버설 뱅크에 풀링시켜 국제적으로 운용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스위스 금유의 이중 구조는 스위스 프랑의 높은 안정성과 함께 정교한 금융 전략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포스트 원유 시대를 대비하는 중동 산유국

 

산유국 입장에서 석유는 귀중한 외교 자원이고 부의 원천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은 1960년 가력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OPEC)를 창설했으며, 1973년 제4차 주동 전쟁을 계기로 석유 위기가 발발하자 OPEC를 전면에 내세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 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산유국이 벌어들인 달러를 지칭하는 '오일머니(oil money)'란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석유 가격의 앙등은 한편에서는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던 많은 나라의 경제를 위협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막대한 오일 머니를 만들어 내면서 이를 환류하는 국제 금융 비즈니스가 활기를 띠었습니다.

바로 이 오일 머니야말로 산유국이 금융력을 기울 수 있는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인도 등 인구 대국들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향후 유가가 더욱 오를 가능성이 높으므로 산유국들이 오일 머니를 토대로 금융을 키울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이 국부 펀드(sovereign wealth fund SWF)의 등장입니다. 두바이와 카타르를 선두로 산유국들은 석유 수출 대금으로 국부 펀드를 창설하고 국가 주도로 전략적인 투자를 감해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 대금 대부분을 서구 은행에 맡기는 식으로 소극적인 운용을 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투자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큰 변화입니다.

 

 


한편 중동 산유국의 금융 산업 육성 전략은 이슬람 금융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을 출현시켰습니다. 이슬람 금융이란 이슬람 교리(샤리아 shari' ah)에 근거해 이뤄지는 금융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이자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교리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업, 예를 들면 돼지고기나 알코올, 도박, 마약 등 금기시되는 분야에 자금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이슬람 성전인 쿠란에서는 이자의 지급과 수취를 명백히 금지하므로 이슬람 금융은 이자를 취급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겉보기에는 이자가 아니지만 이자의 서역을 갖는 요소를 부착함으로써 사실상 이자 지급의 효과를 달성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품 거래의 매매 차익에 이자를 포함시킨다거나 이자를 투자 상품의 배당금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사용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서구 금융에서도 간간히 사용되므로 이슬람 금융이 반드시 유별난 것이라고 볼수는 없습니다. 단지 이슬람 금융에는 아랍어로 표시된 전문 용어가 많이 나와 거리감을 느끼게 할뿐입니다.
이슬람 금융 상품 중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수쿠크(sukuk)라고 불리는 이슬람 채권입니다. 이슬람 금융에서는 이자를 취급할 수 없는데 본래 이자를 지급하는 금융 상품인 채권을 어떤 구조로 설계해 상품화가 가능하게 되었을까? 핵심은 채권 투자자에게 금리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분배하는 구조로 설계된 점입니다. 먼저 자금을 조달하고 싶은 자는 특수 목적회사(SPC)를 설립하고 그 SPC의 명의로 채권을 발행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유한 공장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을 SPC에 매각함으로써 SPC로부터 채권 발행 대금을 수령합니다. 그러나 자산을 계속 사용해야 사업을 영위 할 수 있으므로, 자금 조달자는 SPC와 리스 계약을 맺어 사실상 예전과 다름없이 자산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자금 조달자는 매 기간 SPC에 리스료를 지불하게 되는데 이것이 SPC의 사업 이익이 되며, SPC는 이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채권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한다.
이러한 구조는 서구 금융에서 사용되는 판매 후 리스(sales and lease-back) 제도를 그대로 적용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현재 수쿠크는 주로 달러로 발행되며, 발행이 가장 활발한 곳은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쿠알라푸르입니다. 이곳에서는 말레이시아 은행이나 중동계 은행 외에도 서구 투자은행들이 참여해 치열하게 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슬람 금융은 교리의 엄격함에도 다양한 구조화 기법을 활용해 예금, 대출, 보험, 채권, 주식, 투자 펀드 등의 금융상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이슬람 금융은 이슬람권에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슬림만이 이슬람 금융을 제공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슬림이 아니라도 이슬람 금융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는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거나 투자 수익률을 높일 목적으로 이슬람금융을 이용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슬람 금융은 일종의 할랄(halal) 인증 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국부 펀드 ◆

미국계 경영 컨설팅사인 매킨지(McKinsey)는 중동계, 아시아계, 러시아계의 국부 펀드가 등장함으로써 금융의 권력 이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펀드란 정부가 주체가 되어 국제 투자를 추진할 목적으로 조성한 펀드를 말합니다. IMF의 추정에 따르면 국부 펀드의 총자산 규모는 약 2.5~3조 달러로, 헤지펀드의 규모를 상회할 정도로 막대하다. 국부 펀드가 확대된 일차적 이유는 글로벌 불균형입니다. 미국의 거대한 무역 적자는 동아시아 수출 대국의 무역 흑자, 중동 산유국 및 러시아의 오일 흑자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이들 나라의 외환 보유고가 적정 수준을 넘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각국은 외환 보유고를 미국 국채와 같이 신속하게 현금화가 가능한 안전 자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는데, 글로벌 불균형으로 와환 보유고를 미국 국채와 같이 신속하게 현금화가 가능한 안전 자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는데, 글로벌 불균형으로 와환 보유고의 규모가 합계 6조 달러 이상으로 커지자, 이를 수익성 높게 운영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각국에서 국부 펀드가 창설된 배경입니다.

 

국부 펀드의 선구이자 가장 전형적인 모델은 싱가포르의 테마섹(Temasek)입니다. 테마섹은 1974년 외환 보유고의 일부를 적극적으로 운용할 목적으로 설립된 공적 기관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테마섹을 벤치마킹해 한국투자공사(Korea Investment Corporation, KIC)와 중국투자공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국부펀드는 뮤추얼 펀드나 연기금과 달리 보다 장기적으로 자금을 투자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운영 실적을 수시로 평가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민간 펀드와 달리, 국부 펀드는 비교적 여유를 가지고 투자·운영하는 것이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략적이고 과감한 투자도 가능합니다. 특히 전략적인 목적을 갖고 국부 펀드가 다른 나라의 중요한 민간 기업을 매수하거나 경영에 개입할 수 도 있는데, 바로 이 때문에 중국, 중동, 러시아 국부 펀드에 대해 서구의 경계심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시장 거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명시적인 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메디치가, 푸거(Fugger)가 등 중세의 금융 자본은 로마 교황의 권위를 업고 형성되었으며, 주식회사 형태로 동인도 회사가 발족된 것도 국가가 이를 용인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금융은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고, 국가가 금융을 이용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980년대 이후 시장의 자유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등장함으로써 국가가 금융의 최전선에서 후퇴하는 듯했지만, 국가와 금융은 전적으로 유리될 수 없으며 국가는 언제든 금융의 최전선에 주요 주자로서 복귀할 수 있습니다. 국부 펀드는 이러한 미묘한 관계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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