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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경제-영국의 금융강국 지위는 계속된다.

 

미국에 앞서 금융 중심국의 지위를 누렸던 나라는 영국입니다. 흔히 영국은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나라이고, 그 덕분에 세계를 제패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영국의 패권은 상업 혁명이 토대였다.

그러나 18~19세기에 영국이 세계 강국으로 떠오른 것은 물건 만들기의 혁명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상업 혁명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영국의 상업 혁명이란 인도, 아메리카 등지의 식민지를 포괄하면서 세계적인 규모로 무역을 전개한 것을 말합니다.

적어도 17세기까지 세계의 무역은 포르투칼, 스페인, 네덜란드가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후발국이었던 영국이 등장한 것은 1600년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면서부터였고, 이후 영국은 희망봉으로부터 마젤란 해협까지 인도를 중심으로 한 무역을 독점해 갔습니다. 그러나 도전자 영국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항해 조례를 제정해 네덜란드의 중계 무역을 저지하고 세 차례에 걸친 영국·네덜란드를 쇠퇴시켰습니다.

또 영국은 오스트리아, 프랑스와의 7년 전쟁과 프랑스, 스페인과의 스페인 계승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다른 나라의 식민지를 획득함으로써 글로벌 무역 체제를 확립하고, 도전자에서 세계 패권자로 변모해 갔습니다. 영국은 원래 모직물을 수출하고 제품을 수입하는 식으로 유럽 대륙 국가들과 무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식민지가 점차 확대되면서 영국의 무역 구조도 식민지에서 원재료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고 다시 식민지로 수출하는 형태로 점자 바뀌었습니다. 이로써 18세기 후반에는 대유럽 무역보다는 대식 민지 무역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아메리카 식민지와의 무역량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으며, 대서양 노예무역이나 아시아 무역도 그에 버금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노예무역은 영국, 아프리카, 카리브해를 잇는 삼각 무역으로서 노예를 노동력으로 사용하는 사탕, 면화, 담배의 플랜테이션을 확대시키고 이들의 무역을 급증시켜 영국에 거대한 이윤을 안겨 주었습니다. 

 

또 아시아 교역의 핵심인 인도로부터 오랜 전통의 면직물 기술을 받아들인 영국의 면직업은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확보해 막대한 국부 창출에 기여했습니다.

이처럼 영국 경제 발전의 특징은 무역을 키워 부를 축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은 무역 중심국의 지위에 머물지 않고 무역으로 쌓은 부를 금융 자본으로 전환해 금융 중심국의 지위까지 획득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무역과 금융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일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찰로 결제가 이뤄지는 일상적인 상거래의 경우에는 매매와 결제가 동시에 이뤄지므로 금융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용카드로 지불하거나 할부 판매를 이용하고 수표를 사용하면, 매매와 결제 간에는 다소간 시간이 걸려 그 기간 중에 금융이 발생합니다.

이처럼 상거래에는 금융이 개입할 여지가 큽니다. 특히 국경을 넘는 원거리 무역에 있어서는 금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상거래와 달리 무역 거래는 거래의 약정에서 제품의 인도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고, 거래 단위도 크고 물류의 이동 거리도 길기 때문에 상거래 자체의 위험이 클 뿐 아니라, 거래 상대에 대한 신용 조회가 어려워 누군가 중간에서 신용을 조사해 주고 대금의 지불을 주선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무역과 금융이 함께 발전하는 이유이자, 영국이 무역 중심국의 지위를 살려 금융 중심국의 지위를 확보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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