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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의 위기 해답은 없는 것일까?

 

통화의 위기는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합니다. 거품형 금융 위기도 거시적, 구조적 요인에 미시적, 기술적 요인이 결합되어 발생하듯이, 통화 위기형 금융 위기도 외부적 국제 환경에 국내적 모순이 결합되어 발생합니다. 그러나 통화 위기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내적 요인과 별개로 자본 자유화라는 외부적 조건하에서 취약성을 드러낸 고정 환율제의 문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 금융 이론에서는 각국 통화 당국의 자국 통화의 환율을 일정한 목표 수준에서 무리하게 유지하려 고집하는 것이 통화 위기의 주된 요인이라고 주목해 왔습니다. 사실 1990년대 이후에 발생한 각국 통화 위기는 예외 없이 자국 통화의 가치를 특정 통화의 가치에 고정시키는 환율 페그제(exchange rate peg system) 혹은 고정 환율제 하에서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각국 통화 당국이 환율의 목표 수준을 설정하지 않고 환율이 외환 시장에서 자유롭게 변동하도록 놔두는 변동 환율제를 채용할 경우 원리적으로 통화 위기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불가능성 원리 

 

고정 환율제가 갖는 이러한 취약점은 IMF의 고위 정책 자문관을 역임했던 미국 금융경제학자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는 1994년 「21세기의 국제 통화 제도(International Monetary Arrangenments for the 21stCentury)」(1994)라는 저서에서 통화 제도의 양극 분화론을 제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21세기 각국의 통화 제도는 고정 환율제를 버리고 변동 환율제로 이행하거나 혹은 유럽연합과 같이 역내 단일 통화를 창설해 역내 국가 간의 환율 변동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고정 환율제를 채용한다고 반드시 통화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위안화 환율은 사실상 달러에 고정되어 있으나 중국에 통화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전무합니다. 중국은 자본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정 환율제 하에서 통화 위기가 발생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국제 통화 제도의 핵심 이론이라고 볼 수 있는 삼위일체 불가능성 원리(theorem of impossible trinity)를 이해해야 한다.

 

삼위일체 불가능성 원리

로버트 먼델과 마커스 플레밍(Marcus Fleming)이 1960년에 개발한 '먼델·플레밍 모델'을 뜻합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환율의 안정, 독립적인 통화 정책, 자유로운 자본 이동이라는 세 가지 조건은 한꺼번에 달성될 수 없습니다.

 

각국의 입장에서 최적의 정책 조합(policy mix)은 첫째, 고정 환율제를 채택해 환율을 안정시킴으로써 민간의 경제 활동이 환위험 없이 이뤄지도록 하고, 둘째, 금융 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해 자국의 경제 사정에 맞게 이자율 수준과 통화량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것이며, 셋째, 자본 자유화를 추진해 국제 자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경제의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불가능성의 원리에 따르면 고정 환율제, 금융 정책 주권, 자본 자유화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습니다. 즉 이 세 목표는 개방 경제를 표방하는 나라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정책 조합이지만, 이 세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나라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목표 중에서 하나는 포기하고 두 가지 목표만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환율의 안정을 위해 고정 환율제를 채택하고 자본 시장의 효율화를 위해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즉 나머지 목표인 재량적인 금융 정책을 포기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경기가 침체해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금리 인하 등 자율적인 금융 정책을 채택해서는 안됩니다. 그이유는 이자율을 낮출 경우 이 나라의 실질 이자율이 다른 나라의 실질 이자율보다 낮아져 자본의 해외 이탈은 이 나라의 통화에 절하 입력을 가해 고정 환율을 지키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통화 당국이 외환 시장에 개입해 외화를 팔고 자국 통화를 대거 사들이는 방식으로 고정 환율을 지키려 노력하겠지만, 그런 노력이 크면 클수록 외환 보유고가 고갈될 위험도 커질 것입니다.

 

결국 이나라가 고정 환율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나라가 원치 않음에도 금리를 인상하는 정책뿐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대도 이 나라가 금리 인하를 고집할 경우(1997년 태국의 위기 때 그러하듯이) 국내외의 투기 세력은 현물환 시장과 선도환 시장에서 이 나라의 통화를 투매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 나라의 통화를 대량으로 빌려 왼 환시장에서 공매도함으로써 통화가치의 절하를 압박할 것입니다. 투기 세력의 계산은 간단합니다. 이 나라가 결국에는 고정 환율을 포기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자신들이 보유한 외화 자산의 가치가 높아져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환투기가 심각하게 발생한 것은 삼위일체 불가능성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가 고정 환율과 자본 자유화라는 두 정책 목표를 선택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목표인 금융 정책의 재량권까지 욕심을 냈기 때문에 결국에는 고정 환율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1990년대 페그제 혹은 고정 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던 여러 나라에서 통화 위기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흥미로운 것은 삼위일체 불가능성 원리에 의해 중국에서 통화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도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은 고정 환율제와 재량적인 금융 정책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선택한 대신 자본 자유화를 포기했습니다. 바로 이 덕분에 중국에는 그동안 통화 위기가 발발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이 자국 경기를 부양할 목적으로 이자율을 낮추거나 통화량을 늘리는 식의 확대 통화 신용 정책을 실시해도 자본이 자유롭게 이탈할 수 없으므로 고정환율을 지키는 데 어려움이 없고 따라서 통화 위기가 발생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중국이 삼위일체 불가능성 원리를 준수함으로써 통화 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고 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것은 중국으로 선 바람직한 선택이지만, 중국의 성장과 발전에 따른 과실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는 국제 금융 자본의 관점에서는 불만의 소지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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