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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의 위기-외부 조건만이 문제였을까?

 

1990년대에 발발한 통화 위기는 자본 자유화라는 새로운 글로벌 금융 질서 하에서 발생한 새로운 형태의 위기입니다. 특히 1997년 동아시아 각국에서 경상 무역 수지가 악화되기는 했지만 거시 경제 사정이 특별히 나쁘지 않았는데도 통화 위기가 발발한 것은 자본 자유화로 인해 외국 자본이 빠르게 유입에서 유출로 전환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통화 위기의 원인은 자본 자유화라는 새로운 국제 금융 질서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는 외부 조건론이 성립합니다.

즉 위기국이 거시 경제를 잘못 관리해서라기보다는 새로운 국제 금융 질서에 적응하지 못해 위기가 빚어졌다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외부 조건론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것은 자칫 균형감을 상실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통화 위기는 현상적으로 자본 자유화의 조건하에서 외국 자본의 과잉 유입, 과잉 유출이 환율 변동을 교란시킨 사태이지만, 와국 자본의 광폭한 유출, 유입의 배후에는 이를 조장하거나 부추긴 국내적 모순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즉 외부 조건에 내부 결함의 관점을 결합해야만 보다 종합적인 설명이 가능합니다. 내부 결함의 관점에서 특히 홍미로운 것은 한국의 재벌 구조입니다. 한국은 위기 전 5대 재벌의 매출액 합계가 GDP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재벌의 경제적 비중이 높았으며, 이 때문에 재벌이 행사하는 정치적 영향력 역시 막강했습니다. 재벌의 생사가 국민 경제의 사활적 조건이라는 이유로 재벌이 정부 정책을 좌우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1990년대 초부터 재벌의 경영 실적은 양호하지 않았습니다.

1993~1996년에 30대 재벌의 총자산 이익률(ROA)dms 3% 수준이었고, 특히 위기 전년도인 1996년에는 0.2%로 악화되었습니다. 최상위 5대 재벌만이 어렵시리 플러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었을 뿐 나머지 재벌은 대부분 마이너스에 허덕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처러 재벌의 수익성이 악화 일로 있었음에도 재벌에 대한 금융권의 대출이 계속 확대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재벌의 부채 비율(부채 자본/자기 자본)이 500%가 넘을 정도로 매우 높은 상태에서 수익성이 부진하다면 금융권으로선 대출을 축소 조정하는 것이 당연한데, 재벌에 대해 정부의 암묵적 보증(impliclt guarantee)이 있다는 막연한 믿음에 의해 금융기관이 재벌에 대한 위험 대출을 계속 감행한 것입니다.

그 결과 재벌들은 구조 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는 정공법을 취하지 않고 역으로 더욱 몸집을 키우거나 사업을 다각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은폐 했습니다. 

즉 사업의 이익률이 낮아도 덩치를 키우면 이익의 파이가 커진다는 무모한 발상에 따른 것입니다. 

이로써 재벌은 막대한 규모로 부채를 동원해 대규모 투자에 나섰습니다. 당시 한국 경제의 총저축률은 GDP의 30%를 상화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재벌의 투자 욕구, 성장 요구를 채우기는 부족했습니다. 이때 재원 조달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외자 유치였습니다.

 

재벌은 정부를 부추겨 금융 시장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외국 자본을 끌여들였습니다. 이미 1993년부터 한국 정부는 국내 은행의 외화 차입 한도를 크게 확대시켜 주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때 한국 정부가 단기 외화 차입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허용한 반면 장기 외화 차입에 대해서는 오히려 제한을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단기의 경우 이탈이 용이해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위험성이 내재해 있음에도 이러한 난센스 정책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국제 자본시장에서 단기 자본을 조달하는 것이 장기 자본 조달보다 훨씬 용이하다는 점을 들어 재벌이 이를 로비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장기 자본의 유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정부 방침을 내세워 아직은 정부가 자본 자유화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정치적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재벌의 레버리지 동원 요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재벌은 금산 분리 정책에 의해 은행을 소유할 수 없었지만 다른 형태의 금융 기관은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재벌이 사금고의 파이프라인으로 주목한 것은 특히 종합금융회사(종금사)였습니다. 종금사는 증권인수와 리스업을 영위하는  외에도 기업  대출이 가능했으며 국내에서 회사채나 CP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물론 외자 조달이 거의 무제한으로 가능했습니다.

 

종금사의 이런 특수성 때문에 재벌은 종금사에 매력을 느끼고 정부에 로비를 펼쳐 종금사를 신설하거나 기존 금융 회사를 종금사로 전환했습니다. 

이로써 1990년에는 6개사에 불과했던 종금사가 통화 위기가 터진 1997년에는 30개사로 늘어났으며, 이중 16개사가 재벌 소유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외자 도입의 통로가 활짝 열리자 재벌은 더욱 과잉 부채·과잉 투자로 몸집을 키웠습니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과잉 설비 상태였으나 재벌의 무모한 신규 투자는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국내적 모순 혹은 내부 결함에 의해 위기는 이미 예정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재벌은 대마불사 논리로 정부의 정책을 좌우했고 관치 금융의 타성에 젖은 금융 기관은 정부의 암묵적 보증을 믿고 과잉 대출을 공급했습니다. 이때 금융 기관은 국내 저축만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자본 자유화 환경에서 해외로부터 단기 자본을 마구 끌어들였습니다. 이처럼 무제한적 자본 동원하에서 추진된 재벌의 비효율적 과잉 투자는 마침내 부실을 눈덩이처럼 키우면서 위기를 예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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