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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공학-위기의 거시적 구조를 봐야 한다.

 

이처럼 서브프라임 위기는 현대 금융공학이 인간의 탐욕과 결합해 자초한 재앙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시적이고 기술적인 분석에 따른 설명입니다. 시야를 넓혀 생각해 보면 서브프라임 위기에 거시적 요인이 개입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저축 과잉과 미국의 과잉 소비라는 글로벌 불균형 구조 속에서 위기가 잉태되었다.'라는, 위기의 거시적 구조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길게 보면 1990년대 초반 이후, 짧게 보면 2002년 이후 세계 경제는 순항했습니다. 성장률은 높은데 이자율은 낮게 유지되었고, 유가는 치솟는데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또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심각함에도 달러 가치는 폭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기존 경제학 이론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세계 경제의 독특한 상황을 가리켜 연준 이사회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재임 중 "수수께끼(conundrum)"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시작으로 구공산권이 해체되면서 전후 냉전 체제가 세계화 체제로 대체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 질서 변화는 단지 정치, 외교, 안보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미치는 지각 변동입니다. 무엇보다도 중국, 인도, 러시아, 동유럽 등 과거 공산 진영 국가들이 마침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이들이 끌어안고 있는 약 30억의 인구가 세계 경제에 새롭게 편입되어 산업화 대열에 합류한 것입니다. 이로써 기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의 자본은 이들 나라의 저인건비 노동력을 활용할 목적으로 생산 기지를 재배치하고 국제 분업을 가속화하면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조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차이메리카(Chimerica)입니다.  중국은 낮은 인건비로 값싼 물건을 만들어 미국과 전 세계에 공급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물가를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자본은 중국을 생산 및 조달 기지로 활용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며 높은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린스펀이 수수께기로 지목한 세계 경제의 새로운 현상은 세계 질서가 냉전 체제에서 세계화 체제로 이행하면서 등장한 '중국 팩터(China factor)'에 의해 빚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차이메리카란

차이메리칸란 하버드 대학 역사학자 닐 퍼거슨(Nial Ferguson)이 만든 신조어입니다. '차이(chi)'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 개발도상국을 뜻하며, '메리카(merica)'는 미국을 위시한 기존의 선진 산업국을 뜻한다.

 

따라서 세계 경제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중국을 이해해야 합니다. 중국의 기본 입장은 경제 발전을 위해 저가품의 생산과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며, 이것이 가능하려면 중국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외환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위안화를 풀고 달러를 사들여 2조 달러를 상회하는 막대한 외환 보유고를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막대한 달러를 재원으로 미국의 국채를 대거 사들였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수출 시장인 미국의 소비시장이 잘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국은 막대한 재정 적자로 인해 금리가 인상되기 쉬운 환경이라고 볼 수 있는데, 미국의 금리가 오르면 경제가 침제 되어 중국 제품의 수출 시장이 좁아집니다. 바로 이 때문에 중국은 거대한 외환 보유고를 동원해 미국의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미국이 저금리 경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중국의 진정한 배려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중국은 어디까지나 자국 산업의 경쟁력이라는 국익 보호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자국 국채를 중국이 사들이는 덕에 금리가 낮게 유지되었을 뿐 아니라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앙등하면서 왕성한 소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차이메리카 구도는 일종의 행복한 결혼 관계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중국은 과잉저축의 재원을 모아 미국의 재정적자를 보전하는 일을 자임했고, 미국은 중국에 막대한 소비 시장을 제공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 경제는 인플레 없이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호조건을 미국이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부동산 투지와 과잉 소비에 매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이 글로벌 광잉 저축의 유입을 기술의 혁신이나 실물 경제의 발전으로 유도하지 못하고 금융의 과잉을 몰고 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위기가 잉태된 거시적, 구조적 환경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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