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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들에게 대출해 주었을까?

 

서브프라임 위기는 초대형 글로벌 위기로 확대되었지만 문제가 싹튼 것은 미국 주택 금융시장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원래 미국의 주택 대출 증권화 시장은 지니메이(Ginnie Mae), 프레디맥(Freddie Mac), 패니메이(Fannie Mae)라는 3대 정부계 주택 금융 기관에 의해 창시되어 양질의 주택 대출채권만을 취급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들 준정부 기관이 관여하는 거대한 주택 금융 시장에서는 신용불량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서브프라임 위기 때 문제가 된 것은 민간 금융 기관이 독자적 판단에 의해 신용도가 낮은 채무자에게 제공한 주택대출이었습니다. 이를 카리 켜 서브프라임 대출(subprime loan)이라고 하는데, 서브프라임이란 프라임(우량)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용도가 낮은 서브 프라임 고객에게 어떻게 장기의 주택 담보 대출이 제공된 것일까?

 

※ 패니메이는 대공황기였던 1938년 미국 연방 정부가 설립한 주택 금융 기관으로, 정식 명칭은 연방주택저당금고(Federal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 FNMA)다. 1960년대 후반 저축대부조합(S&L)의 자금난으로 신규 주택 대출이 위축되는 사태가 빚어지자. 1968년 연방 정부가 직접 출자해 정부 주택저당 금고(Government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 GNMA), 즉 지니메이를 설립했고, 1970년에는 준정부 기관 형태로 연방 주택저당 공사(Federal Home Loan Mortgage Corporation, FHLMC), 즉 오늘날의 프레디맥을 설립했습니다. 지니메이와 프레디맥은 각가 1970, 1971년부터 주택 대출의 증권화 업무를 개시했으며 패니메이도 뒤늦게 1981년부터 이 업무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초 개인의 신용도를 수치로 환산한 신용 점수 제도(credit scoring system)가 개발되어 신용 심사가 기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증권화 덕분에 대출 기관들은 신용 위험을 직접 부담하지 않아도 되므로 대출을 제공하면서 상환 능력을 엄격하게 따지지 않았습니다. 소득 수준에 비추어 채무 상환 능력을 판단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주택 가격에 비해 대출 규모가 적정한지를 판단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당연한 지표들이 모두 무시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른바  '닌자(NINJA)' 대출이라 해서 일체의 소득 근거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이렇다 할 재산도 없는(no income, no job, no asset) 사람에게까지 대출을 해주었습니다.

 

거시 경제 사정도 방만한 대출을 부추겼습니다. 2000년대 초 인터넷 거품이 파열하고 2001년 9. 11 사태가 발발한 이후 미 연준 이사회는 이자율을 인하해 유동성을 확대한다는 방침하에 금융 완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로써 과잉 유동성이 창출되었는데, 풀린 자금의 상당 부분은 당시 저조했던 주식 시장을 피해 주로 주택 금융 시장에 유입되었습니다. 

저금리 상황에서 고수익의 투자 상품을 찾던 투자자들에게 MBS와 CDO가 크게 인기를 끌었기 때문입니다. 또 전후 미국에서 부동산 가격이 일제히 하락한 적이 한 번도 없으므로 집값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안심했습니다. 차입자가 설혹 채무를 불이행하더라도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집을 차압해 처분해서라도 대출 채권을 회수할 수 있으므로 대출 기관, 투자은행, 투자자, 감독 당국 할 것이 모두가 안심하고 무대 위에 뛰어올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마침내 거품이 없어지다.

 

서브프라임 대출은 이렇듯 집값이 계속 상승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성립하는 파행 대출이었습니다. 

따라서 집값이 하락하면 문제가 터질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주택 경기의 과열 조짐이 뚜렷해진 2004년 중반 이후 연준 이사회는 기존의 금융 완화 정책을 급선회해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연방 기금 금리가 2년 만에 1%대에서 5.25%로 치솟자 부동산 시장은 즉각 이자율 쇼크를 받고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집값이 떨어지면서 대출 상환을 못 하는 경우가 빈발했고 특히 서브프라임 대출의 연체율이 급상승했습니다.

이처럼 주택 거품이 파열하자 주택 대출 시장이 즉각 부실화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유동화 시장으로, 서브프라임 대출을 근거로 발행한 유동화 증권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증권화는 수많은 주택 대출 채권을 섞고 자르고 붙이는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기술이므로, 유동화 증권 투자자들은 자신이 보유한 유동화 증권의 담보 물건이 어디에 위치한 것인지,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런 정보 비대칭의 문제 때문에 서브프라임 대출이 부실화하자 전 세계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유동화 증권 가격은 더욱 폭락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유동화 증권을 사들인 투자자들입니다. 유동화 증권의 가격이 폭락하면 당연히 이를 보유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게 됩니다. 특히 큰 타격을 입은 투자자 중에는 세계적인 헤지 펀드, 상업은행, 투자은행이 들어 있는데, 이들의 손실 규모가 워낙 커서 자기 자본까지 잠식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헤지 펀드, 상업은행, 투자은행의 투자 손실이 그토록 막대했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레버리지(leverage)라는 금융공학을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레버리지는 자기 자본을 근거로 부채를 끌어당겨 투자 자산의 규모를 키우는 재무 기 버을 말하며, 직역하는 '지렛대 효과'입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로부터 1억 달러의 투자 자본을 모집한 한 헤지 펀드가 있는데, 이 펀드의 매니저가 유동화 증권이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해 유동화 증권에 '올인' 하기로 결정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헤지 펀드는 모집한 1억 달러의 자기 자본을 모두 투입해 유동화 증권을 사들일 것입니다. 또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1억 달러의 유동화 증권을 담보로 1억 달러의 차입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레버리지로 동원한 1억 달러로 다시 유동화 증권에 추가 1억 달러의 투자를 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투자 자산을 담보로 차입을 끌어당기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1억 달러의 자기 자본으로 투자 자산 규모를 수십억 달러로 키우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기대한 대로 증권 가격이 올라가면 작은 자본금으로 높은 투자 수익률(return on investment, ROI)을 올릴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자기 자본의 100배로 자산 규모를 키울 경우, 증권 가격이 1%만 상승해도 투하한 자본금에 대해 100%의 이익이 창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증권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레버리지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기 자본의 100배로 레버리지를 벌린 경우, 증권 가격이 1%만 하락해도 자본금이 송두리째 잠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돈을 빌려 준 금융 기관의 입장에서는 차입자의 자산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담보 부족을 이유로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는 마진 콜을 발동합니다. 이렇게 마진 콜을 요구 받으면 헤지 펀드로서는 유동화 증권을 매각해 신속히 현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유동화 증권 시장의 폭과 깊이가 층분히 크지 않아 매물이 약간만 늘어나도 가격이 폭락하게 됩니다. 그러면 대출 금융 기관은 다시 마진 콜을 발동해 유동화 증권의 추가적인 매각을 강제하게 되고 그에 따라 또다시 시장 가격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이른바 매도가 매도를 불러 급격하게 레버리지를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디레버리지(deleverage) 사태가 벌어지면서 헤지 펀드의 자본금이 고갈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디레버리지는 자산 가치의 하락을 자산 가치의 대폭락으로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여, 마침내 기관 투자자와 금융 기관의 도산을 야기했습니다. 

서브프라임 위기 때도 디레버리지의 사이클이 무섭게 급회전했는데 여기에는 기간 불일치의 문제와 시가주의 회계의 문제가 개입되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 기간 불일치와 시가주의 회계 ◆

 

기간 불일치(maturity mismatch)란 자산과 부채의 만기기 일치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헤지 펀드, 상업은행, 투자은행이 투자 자산으로 보유한 유동화 증권은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원금과 이자를 회수할 수 있는 장기물입니다. 반면 이들이 레버리지로 동원한 부채는 대체로 단기성 자금입니다.

이러한 장·단기 부채의 조달 비용보다 높으므로 평상시에는 안정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이나, 금융 시장이 불안해지거나 자산 가격이 하락해 마진 콜이 발생하는 상황에 처하면 단기 부채를 연장(roll-over)하는 것이 어려워져 즉각 유동성 위기를 초래합니다. 

시가주의 회계(mark-to-market accounting)도 문제를 키웠습니다. 이전까지 회계의 일반 원칙은 자산의 가치를 자산을 구입한 원가로 기재하는 역사적 원가주의를 채택했으나, 오늘날 국제회계기준IFRS은 시가주의 회계를 채택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시가주의 회계의 핵심은 대차대조 표상의 자산 가치를 가장 최근의 시장 가격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이를 즉각 평가손으로 대차대조표와 포괄손익 계산서에 반영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가 회계의 원칙은 재무제표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금융 시장이 일단 위기 국면에 들어가면 오히려 위기를 더 심화시킵니다. 즉 시가 회계에 따라 평가손이 발표되면 평가손이 발생한 자산에 마진 콜이 들어오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이들 자산을 팔면 시장가격이 더 떨어지면서 이들 자산을 보유한 기관 투자자나 금융 기관의 대차대조표가 일제히 악화됩니다.

그렇게 되면 해당 자산에 대한 투매 현상이 일어나면서 각종 펀드와 금융기관의 부실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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