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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서브프라임 위기

 

인터넷 거품이 파열하고 엔론 사태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거품이 잉태되었습니다. 무대가 된 곳은 미국의 주택 금융 시장이었습니다. 미국의 주택 금융 시장은 대출 시장과 증권화 시장으로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주택 대출시장은 주택 구입자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일차적인 시장이고, 증권화 시장은 주택 대출 채권을 원자산으로 해 유동화 증권을 발행하고 유통시키는 이차적인 시장입니다.

이때 받아야 할 권리를 뜻하는 채권(債權)과 증권의 일종인 채권(債券)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앞의 채권은 '타인으로부터 받을 권리'라는 의미로서 대출 채권이라고 할 때의 채권이고, 뒤의 채권은 주식과 함께 유가 증권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현재 문맥에서는 유동화 증권으로 발행된 증서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택 대출 기관이 차입자에게 대출을 제공하면 그것으로 금융의 과정이 일단락됩니다. 그러나 자본 시장이 공학적으로 발전한 미국에서는 대출 채권의 증권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즉 대출 기관들은 대출 채권(債權)을 만기까지 보유하지 않고 투자 은행에 팔아넘기고, 투자은행은 수천수만 개의 대출 채권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위험을 분산시키고 또 여러 방법으로 신용도를 보강한 후, 이 대출 자산을 근거로 주택 대출 담보부 증권(MBS), 부채 담보부 증권(CDO)이라는 유동화 증권을 채권(債券)의 형태로 발행해 전 세계 투자자에게 팔았습니다.

 

이 덕분에 모두가 이익을 얻었습니다. 대출 금융 기관은 대출 채권을 자신의 대차대조표에서 떨어냄으로써 신용 위험을 부담하지 않게 되었고, 투자은행은 대출 채권을 패키지로 묶어 유동화 증권으로 발행하는 증권화 과정을 주도하면서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투자자들은 대출 자산을 근거로 하는 유동화 증권에 투자함으로써 주택 대출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증권에 대한 더 상세한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 우선·열후의 금융공학◆

 

서브프라임 위기로 인해 증권화를 주도한 투자은행에 대한 비판 여론 거세다. 그러나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는 투자은행이 마구잡이로 증권화를 시도했을 리가 없습니다. 투자은행은 나름대로 정교한 방법론으로 증권화 프로세스를 관리해 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안전장치가 우선·열후 구조(senior-subordinate structure)입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0억 달러의 주택 대출 포트폴리오가 있다고 가정을 하겠습니다.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평균적으로 전체의 2%만이 채무 불이행이 될 수 있고,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 최대 20%(20억 달러)까지 부실이 확대될 수 있는데 그 확률은 0.1%입니다. 이러한 분석을 전제로 하면 100억 달러의 주택 대출 중 80억 달러는 원금 상환이 99.9%이상 확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전한 자산(100억 달러 중 80억 달러)을 우선(優先) 부분이라고 하는데 이를 근거로 MBS를 발행하면 AAA의 신용 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주택 대출 시장에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나머지 20억 달러의 열후(劣後)부분에서 모두 흡수할 수 있으므로, 우선 부분을 근거로 발행한 유동화 증권의 원리금 상환은 확실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편 20억 달러의 열후 부분도 통계 분석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부실화하는 것은 2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18억 달러는 50~99.9%의 확률로 원리금 상환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18억 달러를 근거로 유동화 증권을 발행할 경우 AAA는 아니지만 AA나 BBB의 신용 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열후 부분 중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18억 달러를 가리켜 매 저닌(mezzanine)이라 부릅니다.

메 저닌 이란 '유럽의 건축물에서 위층과 아래층 사이에 끼어 있는 공간'을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최종적으로 남은 2억 달러를 에퀴티(equity)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부실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에게 매각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증권화를 주관한 투자은행이 직접 재고로 보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투자은행은 증권화를 통해 엄청난 수수료 수익을 거두기도 하지만, 일종의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에퀴티의 재고 위험을 끌어안고 있으므로 자칫 주택 대출 시장이 부실화하고 유동화 증권의 가격이 폭락할 경우에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총체적으로 파탄에 이를 정도로 부실화한 데는 바로 이런 에퀴티 재고 위험도 일부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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