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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경제학-거품 사기를 만났을 때

 

마침내 사기가 끼어들었습니다. 기업들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업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투자자를 만족시킬 목적으로 주가을 끌어올리기 식으로 경영에 골몰합니다.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들은 이례적으로 높은 주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매우 높은 이익 실적치를 필요로 했고, 대기업 경영자들은 이들의 요구에 굴복해 이익 목표의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분식 회계(cosmetic accounting)를 감행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엔론(Enron)입니다. 엔론은 민영화한 전력 시장에서 전력을 사고파는 트레이더로서 활약하거나 기후 파생상품을 개척하는 등 높은 혁신 능력을 발휘해 2000년에는 시가 총액 기준으로 미국의 일곱 번째 대기업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거품이 파열로 엔론도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복잡한 부외 자회사 구조를 활용해 회사의 재무 상태를 위장하고 이익을 부풀린 것입니다.

파트너십 형태로 설립한 부외 자회사들은 재무제표에서 분리되었으므로, 엔론은 이들을 활용해 손실과 부채를 털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미국 최대 회계 법인이었던 아서 앤더슨(Arhur Andersen)은 엔론의 재무제표가 적정하다는 감사의견을 제출했으며, 애널리스트들은 엔론이 붕괴하기 직전인 2001년 가을까지도 엔론을 매수 종목으로 추천하고 있었습니다.

엔론과 같이 회계 부정을 저지른 기업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통신업체들은 광섬유 기반 시설을 서로 높은 가격을  스와프 하는 방식으로 가공의 자본 이득을 창출했습니다.

 

타이코 인터내셔널(Tyco International)은 합병할 기업의 비용을 합병 전에 한껏 높여서 합병 후 이익이 저절로 발생하도록 만드는 스프링보드(spring board)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월드컵(WorldCom)은 일상적인 경비 지출을 중·장기 투자 지출로 둔갑시켜 비용 처리를 지연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부풀렸습니다.

이로써 기업의 CEO는 "최고 횡령 담당자(chief embezzlement officer)"로 CFO는 "최고 사기 담당자(chief fraud officer)"로 전락했다는 씁쓸한 블랙 유머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거품의 와중에 부도덕이 판을 쳤습니다. 투자은행은 비즈니스 모델이 분명치 않은 주식물량을 쏟아 냈고, 애널리스트들은 이들 기업의 주가 부양에 혈안이 되었으며, 경영자들은 분식회계의 유혹에 빠졌고, 투자자들은 졸부가 되고 싶은 욕망에 감염되었습니다. 그러나 중력의 법칙에 의해 결국 거품은 파열했고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회계 법인, 기업의 경영자 및 이사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마침내 부시 정부는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2002년 사베인스·옥슬리(Sarbanes-Oxley) 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경영자, 이사회, 회계사, 애널리스트들이 직면하고 있는 이해 상층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강도 높은 법입니다.

 

금융의 역사에는 인터넷과 같은 신기술의 가능성을 믿고 투자 붐이 일어난 적이 많았습니다. 1850년대의 철도 건설이 좋은 사례입니다. 철도는 통신업, 유통업을 크게 부흥시킬 것으로 기대되었고, 실제 이들 업체의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철도 회사의 높은 주가가 정당화될 수는 없었습니다. 철도 회사가 경제 전반의 효율을 높인다고 해서 이익을 많이 내고 주가가 반드시 높아져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신흥 전력 산업도 공장의 배치와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면서 경제 전반의 효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전력 회사는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아 20세기 전반에 걸쳐 주가가 매우 낮았습니다. 이후 자동차, 라디오, 비행기, TV 등 신기술 제품들이 계속 등장했으나 열광적으로 기대를 모았던 것과는 달리 높은 주가 형성에 실패했습니다. 이처럼 신기술 산업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다고 신기술 산업이 높은 이윤을 창출하고 높은 주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은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효율을 높였지만, 그렇다고 인터넷 기업들이 큰돈을 번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인터넷 거품은 파열했습니다.

 

◆ 이해 상충 문제 ◆

 

금융은 정보를 다루는 산업입니다. 따라서 투명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정보를 생산하는 것은 금융 시장 전체의 신뢰가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금융 기관이나 회계 법인, 신용 평가사 조직 내부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다 보면 왜곡된 정보가 생산, 유포되어 금융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유형의 이해 상충 문제를 살펴봅니다.

첫째 유형은 투자은행 내부의 리서치 부문과 인수 부문 간에 발생하는 이행 상충입니다. 투자은행의 리서치 부문은 본래 투자자들의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객관적인 기업 분석 보고서를 생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업무 특성상 기업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인수 부문으로부터 압박을 받게 됩니다. 인수 부문은 우호적인 기업 분석 보고서가 나와야 치열한 인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점을 늘 부각합니다. 그 결과 양 부문 간에 업무 협조나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도록 방화벽이 설치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 희생자는 기업 분석 보고서를 이용하는 투자자들입니다.

 

둘째 유형은 회계 법인의 감사 부문과 컨설팅 부문 간에 발생하는 이해 상충입니다. 회계 법인은 본래 기업이 작성한 재무제표가 일반 회계원칙(generaly accepted accounting principles, GAAP)에 따라 적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판단하는 감사 업무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회계 감사 업무는 특성상 계절적 수요 변동이 심하므로,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자 회계 법인은 경영 컨설팅을 부대사업으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컨설팅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회계 감사를 호의적으로 해 준다거나, 컨설팅 과정에서 잘못 자문한 내용이 감사에서 지적될 경우 이를 시시비비 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희생자 역시 회계정보를 이용해야 하는 투자자들입니다.

이상 두 가지 유형의 이해 상충 문제는 엔론, 월드컵 등 유력 기업에서 분식 회계 스캔들로 인해 기업, 투자은행, 회계 법인 간의 파행적인 연결 고리가 밝혀지면서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이에 부시 정부는 2002년 회계 법인에 대한 연방 감독 기구 설치, 투자은행에 대한 벌칙 강화, 그리고 기업의 내부 통제 시스템 강화를 골자로 하는 사베인스·옥슬리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럼에도 이해 상충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의 와중에 또 다른 형태의 이해 상충이 표면화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셋째 유형으로, 신용 평가사 내부에서 신용 평가 업무와 컨설팅 업무 간에 발생하는 이해 상충입니다. 

신용평가사는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의 신용도를 평가하고 신용 등급을 부여하는 일을 하는데, 문제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 기업이 신용 평가 수수료를 지불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좋은 신용 등급을 받고자 때때로 신용 평가사에 유료 컨설팅 프로젝트를 발주하기도 하며 이것이 객관적인 신용 평가를 저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결국 이 또한 신용 등급 정보를 이용하는 투자자들이 희생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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