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BIG

주식회사-법인격과 유한 책임성이 문제 되다.

 

주식회사의 문제점으로 지목된 것은 법인격과 유한 책임성이라는 주식회사의 고유한 특성이었다. 법인격(legal personification)이란 본래 인위적이며 가상적인 존재에 불과한 기업에 인격을 부여함으로써 인간에게 적용되는 모든 자유와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문제는 인간에게는 도덕성이란 자율 규제 장치가 있으나 기업에는 도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아무런 내적 통제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은 법인격을 이유로 자유자재로 계약을 맺고 막대한 부채를 동원해 빚잔치를 벌이거나 생계비를 밑도는 열악한 임금으로 노동을 수탈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침내 법인격이라는 제도하에서 기업의 자유방임이 인정된 것이다. 또 유한 책임성은 기업이 무모하게 위험을 부담하는 장치가 되었다. 

주주로서는 부채를 동원하는데 드는 자본 비용 이상으로 사업의 수익이 나오면 그 차액은 모두 자신의 이익으로 귀속되며 사업이 실패할 경우 출자금의 한도 내에서만 부담을 지니 부채를 거대하게 동원하는 사업 방식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처럼 법인격과 유한 책임성을 인정한 주식회사 제도에는 근본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는 유인 동기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주식회사의 도산 사태가 적지 않았으며 그로 인한 손실은 모두 사회가 떠안아야 했다. 

당연히 주식회사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끓이지 않았다. 자유 시장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조차 주식회사는 경영자에 의해 과실과 낭비, 비효율이 초래될 수 있다는 비판론을 제기했으며, 영국 사업 당국은 주식회사가 온갖 악행을 저질러도 유한 책임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처벌받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처럼 주식회사 제도에 대한 비판이 높았으므로 산업혁명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기간 중에도 파트너십을 차려 사업을 벌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던 중 주식회사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철도 건설과 같이 거액의 자본을 요하는 사업이 등장함에 따라 각국 정부가 법을 개정해 주식회사 설립을 용이하게 하면서부터다. 

특히 주식회사 제도에 가장 우호적이었던 나라는 당시 신흥 개발도상국이던 미국이었다.

농업국에 불과했던 미국은 19세기 말 이후 대기업과 자본 시장을 빠르게 발전시켜 영국과 견줄 만한 공업국으로 부상했는데, 이는 주식회사 제도가 널리 보급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가 철강 산업을 키우고 헨리 포드(Henry Ford)가 자동차 산업을 일으키고 에디슨이 GE를 창설한 것은 모두 주식회사의 위험 자본 동원 능력을 풀가동한 덕분이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주식회사가 2차 산업혁명을 주도했으며 미국의 공업 대국화를 이끈 주역이었다.

 

주주 주권을 놓고 공방을 펼치다.

 

그러면 주식회사를 주주가 중심이 되어 전횡을 불사해도 되는 기업의 형태라고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주식회사의 활동에는 여러 이해관계자(stakeholder)가 참여하며 주식회사가 생산하는 부가가치는 노동자, 경영자, 자본가, 국가라는 이해관계자 간에 배분된다. 노동자에게는 급여가, 경영자에게는 보수가, 국가에는 세금이, 자본가에겐 이자와 배당금(차입 자본에는 이자, 자기 자본에는 배당)이 지급된다. 따라서 똑같이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더라도 부가가치를 나누어 갖는 분배 구조에서 누구의 권한과 발언권이 강한가에 따라 종업원 지배나 경영자 지배, 주주 지배, 국가 지배라는 기업 지배 구조 형태가 결정된다.

전후 미국의 기업 지배 구조는 대체로 경영자 지배 체제였다. 이러한 특성은 두 법학자 애돌프 벌리(Adolf A. Berle)와 가드너 민스(Gardiner Means)가 함께 쓴 「현대 기업과 사유 재산(The Modern Corporation and Private Property)」(1932)이라는 책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당초 미국의 주식회사 기업에도 소유주가 직접 경영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이들 기업이 거대 자본의 대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주식의 소유 분산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그 결과 발언권이 강한 대주주가 사라지면서 전문 경영자 중심의 지배 구조가 구축되었다. 이들 전문 경영자는 대량 생산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목적으로 노동조합과 일정 수준으로 협력하거나 타협하기도 했고,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사업 규모를 불필요하게 확장해 기업 제국을 형성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이로 인해 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가 노동자들에게 과도하게 배분된다거나 비효율적으로 낭비됨으로써 주주에게 돌아갈 몫이 하락할 여지가 있었다.

이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 것이 마이클 젠선(Michael Jensen)이었다. 젠센은 월리엄 메클 링(William H. Meckling)과 함께 1976년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를 파헤친 논문 「기업 이론 : 경영자 행동, 대리인 비용 및 소유 구조(Theory of the Firm: Managerial Behavior, Agency Costs and Ownership Structure)」 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전선은 주인(principal) 자격의 주주가 대리인(agent) 자격의 경영자에게 포획됨으로써 기획의 효율성이 떨어진 결과 미국 기업의 수익률이 하락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논문은 1980년대 이후 진행된 기업 지배 구조 개혁에서 산파역을 했다. 전선은 경영자 지배형 기업 지배 구조의 문제점을 극복 하려면 적극적인 주주 행동, (주주로부터 위임을 받은) 이사회에 의한 경영자 감독의 강화, 스톡옵션(stock option)을 활용한 경영자 보수 체계의 조정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으며, 나아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활성화해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경영자를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주주 주권론을 두고 공방이 많았다. 특히 경쟁 전략 이론으로 유명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는 「경재론(On Competition)」(1998)이라는 저작에서 주주와 경영자가 밀착되어 단기 실적에 입각한 주가 경영을 펼치고 계량화 가능한 재무적인 지표만을 중시할 경우 기업 특수 자산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짐으로써 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또 재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머튼 밀러(Merton Miller)는 생산물 시장에서 이뤄지는 경쟁만으로 기업의 효율성과 수익성을 충분히 높일 수 있으므로 자본 시장을 통한 주주의 규율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인수·합병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인수·합병이 이뤄지고 나면 중복 투자의 비효율을 걷어 낸다는 이유로 가혹한 구조 조정과 대량 해고가 이어지곤 했는데, 이에 대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사회에 떠넘기는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 주주 가치 경영의 창시자인 젠선은 주주 주권은 강력한 경영자 규율과 상시적 구조 조정을 통해 기업에 누적된 비효율을 걷어 냄으로써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또 생산물 시장에 의한 도태의 메커니즘에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발생하므로 자본 시장에 의한 주주의 규율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또 인수·합병으로 인해 금융 자본 주주들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론에 대해서는 인수·합병으로 주주들이 얻은 초과 이윤은 노동자로부터 부가 이전된 것이 아니라 인수·합병의 결과로 기업의 효율성이 개선됐기 때문이라는 실증 연구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이렇게 쌍방의 찬반 공방은 첨예했다. 그러나 1980년대 대대적인 산업 구조 조정의 과정을 거쳐 1990년대 이후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되살아나면서 전선의 주주 가치론이 대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기업들은 주주가치 경영에 대한 맹렬한 사회적 비판에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연구 개발 투자가 확대되고 기술 진보가 가속화했으며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고 소득 중 앙치(median income)가 개선되었다. 그사이 미국의 산업 구조는 지식 산업 위주로 개편되었으며 주가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고부가가치의 금융업, 전문직 서비스업이 발전하고,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전화, 방송, 출판, 신문, 인터넷, 영화를 아우르는 미디어 산업이 등장했다. 의료 산업, 레저 산업도 크게 발전했다.

또 신생 벤처 기업의 발전도 두드러졌다.

 

벤처 기업은 초기에 자금 사정이 어려우므로 공헌도가 높은 경영자와 기술자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했는데, 스톡옵션은 보너스처럼 회사의 현금 흐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핵심 인력의 헌신을 끌어냈다. 기존 주주는 보유지분의 희석되어 얼핏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회사가 기술 개발에 성공해 주식을 공개하고 높은 주가가 형성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자본시장의 기업 규율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뚜렷한 증거라고 지지자들은 주장했다.

사실 1980년대 미국의 산업구조 조정은 워싱턴의 묵인하에 월스트리트가 주도한 것이었다. 미국 의회에서는 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 일본 등 무역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를 시정해야 한다며 슈퍼 301조 등 보호무역주의 입법 조치가 잇따르고 있었다. 이것은 문제의 원인을 자국 내부에서 찾지 않고 외부에서 희생양을 찾으려는 정치의 '외곽 때리기' 전술에 불과했다. 정치권은 많은 노동자에게 고통을 주는 구조 조정을 직접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런 정치권을 대신해 구조 조정을 담당한 것이 바로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과 투자은행이었다. 이들은 인수·합병을 조언하고 중개하고 필요한 자금을 공급했으며 그 과정에서 높은 성과급을 챙겼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