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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재생과 M&A의 첨병, 사모 펀드

 

사모 펀드는 투자자 모집 방법이나 보수 체계에서는 헤지 펀드와 극히 유사하지만 운용 전략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사모 펀드는 주로 성장성은 높지만 문제가 있는 주식을 대거 사들여 특정 기업의 지배권을 확보한 후, 즉각 이를 전매해 차익을 실현하거나 구조 조정을 실시하고 기업가치를 높인 후 재매각하거나 혹은 기업 공개(initial public offering, IPO)를 해 차익을 실현하는 펀드를 말한다. 이처럼 사모 펀드의 자산 운용은 기업 재생이나 기업 인수·합병을 노리므로 턴어라운드(turn-around) 펀드 또는 바이아웃(buy-out) 펀드라고도 불린다. 사모 펀드도 해지 펀드와 비슷한 시기인 1940년대 후반 미국에서 탄생했다. 그 동기는 전쟁 중에 개발된 군사 기술을 민생용으로 전환시켜 상업화를 시도할 목적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모 펀드의 원형은 일종의 벤처 캐피털(venture capital) 펀드였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1960년대 이후 벤처 붐이 조성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사모 펀드업계에서 벤처 캐피털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그 이유는 보다 금융적 속성이 강한 턴어라운드 펀드나 바이아웃 펀드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기업 재생을 목적으로 하는 턴어라운드 펀드는 미국에서 1978년 연방 도산법이 개정되어 도입되면서 활성화 되었다. 기업 파산 절차는 기존의 경영자가 계속 경영을 맡을 수 있고 신청 사유도 매우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며 채권자의 채권회수도 전면 동결되므로 자금난에 처한 기업에 매우 유리한 제도이다. 따라서 기업 재생 금융이 성장 탄력을 받았다. 특히 미국 은행들이 대규모 부실을 끌어안게 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는 은행으로부터 부실 자산을 사들이는 방식의 재생 펀드가 전성시대를 누렸다. 한편 바이아웃 펀드는 1970년대에 설립된 KKR(Kohlberg Kravis Roberts)이 그 효시인데, 바이아웃 펀드가 활성화된 것은 1980년대 중반 인수·합병 붐이 일어나면서부터이다. 당시 드렉설 버넘램버트(Drexel Burnham Lambert)라는 투자은행의 채권 트레이더였던 마이클 밀컨(Michael Milken)이 이름을 크게 날렸다. 그는 투자 등급이 낮은 채권의 부도율이 예상외로 낮다는 점에 착안해 정크 본드 시장을 개척했는데, 그 덕분에 그동안 표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 기관으로부터 대출을 얻어 매수 자금을 동원해 왔던 바이아웃 펀드들의 매수 자금 조달이 훨씬 수월해졌다. 이후 대규모 매수, 적대적 인수·합병이 줄지어 발생했다. 1989년 KKR이 RJR 나비스코(RJR Nabisco)를 250억 달러라는 전대미문의 거액으로 매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사모 펀드의 한국 상륙과 사회적 공방

 

성장 가도를 달리던 바이아웃 펀드는 밀컨이 내부자 거래로 체포되고 정크 본드 시장이 마비되면서 역풍을 맞았다. 그러나 바이아웃 펀드는 오늘날 자본 자유화의 흐름을 타고 1980년대를 능가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마침내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외환 위기 이후 제일은행, 한미은행, 와환은행이 각각 뉴브리지 캐피털(New Bridge Capital), 칼라일(Carlyle), 론스타(Lone star)라는 바이아웃 펀드에 매각된 것이다. 도대체 은행업에 일체 경험이 없는 사모 펀드에 전국적인 지점망을 갖는 은행을 매각해도 되는지, 또 은행 경영의 선진화에 이렇다 할 공헌 없이 수조 원에 달하는 매각 차익을 실현하고 빠지는 것을 왜 수수방관해야 하는지 사회적인 공분이 일었다. 

 

미국에서도 사모 펀드에 대한 비판론은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사모 펀드는 군수 산업, 첨단 산업 등 국가 안보에 극히 민감한 분야의 기업들을 천격 인수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치권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냈다고 봐야 하므로 당연히 정경 유착 문제가 제기되었다. 한 예로 칼라일은 정치, 군사의 본거지인 위싱턴에 본사를 두고 노골적으로 정치 인맥을 관리해 왔으며, 군수 산업체를 인수한 후 국방부로부터 군수 계약을 무더기로 따내 기업가치를 손쉽게 올리는 방식으로 거액의 차익을 실현하기로 했다.

현재 사모 펀드는 전 세계에 약 2700여 개 존재한다. 이들은 부유층, 재단, 기업, 연금, 금융기관, 대학으로부터 투자 원본을 조달하고, 투자 대상국의 퇴임 정치인, 고위 관료를 고문으로 영입해 로비를 펼치는 방식으로 표적 기업을 매수해 막대한 자본이득을 누려 왔다. 그럼에도 사모 펀드는 당당하게 존재 이유를 피력하고 있다. 경영이 부실해 주가가 낮은 기업을 인수하고 다각도로 경영 개선을 시도해 기업 가치를 높인 후 차익을 실현한 것이므로 어디까지나 정당한 보수라는 주장이다.

 

또 사모 펀드의 원형은 벤처 캐피탈 펀드인데, 알다시피 벤처 캐피털은 실리콘벨리 등지에서 수많은 IT 기업의 창업을 지원했고 그 덕에 1990년대에 미국 경제가 회생한 것이므로 사모 펀드와 같은 다양한 투자 주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모 펀드가 구사하는 경영 개선 방식이 본질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인다기보다는 회계조작, 세무 조작에 의존한다거나 과격한 다운사이징을 실시해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문제로 지적된다. 또 10억 달러 규모의 사모 펀드가 10만 명 이상의 종업원을 거느린 거대 기업을 얼마든지 인수할 수 있는데, 과연 소수의 금융 전문가에 의해 운영되는 사모 펀드가 이런 거대기업의 주인이 되어도 무방한 것인지, 또 인수한 기업을 즉각 비공개 기업으로 전환하곤 하는 것이 소유의 분산과 기업 정보 공개라는 현대 시장자본주의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의문점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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