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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적 투자로 악명 높은 헤지펀드와 사모 펀드

 

펀드의 분류법에 정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편의상 전통적 펀드와 대안적 펀드로 구분할 수 있다. 전통적 펀드는 소액 투자자로부터 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집해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공모펀드가 주종이다. 미국의 뮤추얼 펀드와 우리나라의 투자 신탁이 이에 해당한다. 대안 펀드는 1980년대 이후 급속히 팽창해 온 새로운 형태의 펀드로서 헤지펀드(, hedge fund), 사모 펀드(private equity hund, PEF)가 주종을 이룬다. 대안 펀드는 투자자를 소수의 특수 부유층이나 금융기관 혹은 기관 투자자에 한정해 모집하는 '배타적 투자 클럽'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투자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공모 펀드와 다르다. 감독 당국은 대안 펀드의 투자자들이 금융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자들이므로 공모 펀드와 같이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규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따라 헤지 펀드, 사모 펀드는 일반 공모 펀드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과감한 투자전략을 구사해 왔다. 공모 펀드는 총자산의 10% 이상을 한 종목에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제되고 있지만, 대안 펀드는 위험한 투자에 집중적으로 뛰어들 수 있고 과감하게 레버리지를 동원하기도 하며 자산 가격의 하락이 예상될 때는 공매도를 실시해 시장의 추락을 부추기기도 한다. 또 대안 펀드는 펀드 매니저에 대한 보수 체계가 파격적이다.

 

공모펀드는 대체로 투자자로부터 모집한 투자 원본의 일정 비율만큼 운영 수수료(management fee)를 받지만, 대안 펀드는 운영 수수료 외에 자산 가치가 증대한데 대해 성과 수수료(performance fee)를 얹어 주며, 펀드의 운영성과가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펀드 매니저는 금전적으로 손해를 입지 않는다. 이처럼 위험 추수형으로 설계된 펀드 매니저의 보수 체계로 인해 대안 펀드는 더 공격적으로 자산을 운용한다.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헤지 펀드

 

헤지 펀드의 효시는 1949년 미국의 앨프리드 존스(Alfred W. Jones)가 설립한 제너럴 파트너십(General Partnership)이 모집한 '1호 펀드'로 알려져 있다. 존스는 사회학 박사 학위 소지자로 금융계 출신이 아니며 「포천(Fortune)」지에서 편집을 담당했던 언론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창시한 1호 펀드는 오늘날 헤지 펀드의 주요한 특징을 상당 구분 구비하고 있었다. 롱·쇼트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 쇼트를 통해 레버리지를 일으켰다는 점, 운영자에게 성공 보수를 지급했다는 점, 운영자도 일부 출자에 참여했다는 점등이 그렇다. 그러나 헤지 펀드가 활성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서브프라임 위기 전에 세계의 헤지 펀드 운용 규모는 1조 6000억 달러, 펀드 수는 약 1만 개라고 알려져 있다. 1990년에는 운용 규모가 약 500억 달러, 펀드 수는 600개 정도였으므로 20년이 안 되는 기간 중에 운용 규모는 약 30배, 펀드 수는 약 15배 팽창했다고 볼 수 있다. 헤지 펀드가 이렇게 확대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과 유럽의 부유층을 중심으로 거대한 규모의 여유 자금이 축적되어 헤지 펀드에 투자하겠다는 수요가 많았다. 또 금융의 자유화와 글로벌화에 의해 자산을 운용할 수 있는 시장이 전 세계로 확대된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가장 결정적인 동기는 1970년대 초 달러가치를 금에 고정시켜 온 전후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선진 각국이 변동 환율제로 이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환율의 자유로운 변동이 금리의 자유 변동을 초래하고, 이것이 채권 가격, 주식 가격의 변동성을 더욱 높이면서 금융 시장에서 투기적 이익 창출의 기회가 높아진 것이다. 또 환율, 이자율, 주가라는 금융 시장의 3대 가격 변수의 높은 변동성은 선물, 옵션 등 파생금융 상품이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했고, 운용 제약을 받지 않는 헤지 펀드로서는 이 역시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 브레턴우즈 체제 : 2차 대전 종전을 앞둔 1944년 7월 브레턴우즈에서 열린 연합국의 통화 금융 회의에서 달러의 가치를 금에 고정시키고 여타 통화의 가치는 달러에 고정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성립한 고정 환율 체제를 의미한다.

 

헤지 펀드의 자산 운용은 주로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에서 트레이더로 탄탄하게 훈련을 받은 자들이 고객 연봉을 받고 전직해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헤지 펀드는 전통적인 공모 펀드와 달리 보수 체계가 매우 위험 추수형이며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롱·쇼트 전략을 통한 밀고 당기기

 

헤지 펀드의 자산 운용 전략은 극비 사항이며 구사하는 전략도 매우 다양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기본은 어디까지나 싼 것을 사고(롱) 동시에 비싼 것을 파는(쇼트) 전략이다.

'헤지(hedge)'의 사전적인 의미는 '상반되는 거래를 동시에 실시함으로써 위험을 최소화한다.'라는 것인데, 헤지 펀드의 롱·쇼트 전략은 상반된 거래를 동시에 실시 한다는 점에서는 헤지의 의미를 살리고 있지만, 레버리지를 동원해 시장 가격의 변동에 과감하게 베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헤지의 의미를 무색게 한다. 그러면 롱·쇼트 전략에 대해 알아 봅시다. 헤지 펀드는 어떤 자산은 쇼트 포지션(short position)으로, 어떤 자산은 롱 포지션(long position)으로 가져간다. 이때 자산이란 주식이나 채권이 될 수도 있고 외환(통화)이 될 수도 있으며 석유 같은 1차 상품이나 각종 금융 자산을 기초로 하는 파생상품이 될 수 도 있다. 쇼트와 롱은 시장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인데, 롱 포지션이란 특정 자산을 사들이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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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롱 포지션에서 자산 가격이 오르면 이익이 발생하고 가격이 내려가면 손실이 발생한다. 반대로 쇼트 포지션이란 특정 자산을 빌려 시장에 내다 팔고, 약속한 기한이 되면 다시 시장에서 이를 되사서 되갚는 역 뱡향의 투자 행위이다. 따라서 쇼트란 빌린 자산의 가격이 올라가면 이것을 비싸게 되사야 하므로 손실이 발생하고, 가격이 내려가면 이익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쇼트 포지션과 롱 포지션을 연계시켜 레버리지가 이뤄진다. 자기 자본으로 롱 포지션을 만들면 롱 포지션을 담보로 쇼트 포지션을 축할 수 있고, 쇼트 포지션에서 자산을 빌려다 판 돈으로 다시 롱 포지션의 투자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쇼트와 롱의 관계야말로 헤지 펀드가 레버리지 비율을 투자 원본의 수십 배까지 높일 수 있는 금융의 연금술(alchemy of finance)이다. 즉 헤지 펀드가 롱 포지션을 크게 키울 수 있는 것은 투자 원본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롱 포지션을 담보로 쇼트 포지션을 끌어당기고 이를 통해 다시 롱 포지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투자 원본에 대해 100배로 레버리지를 키운 헤지펀드를 상정해 봅시다. 롱 포지션에서 자산 가격이 1%만 상승해도 투자 원본의 100%에 달하는 이익이 발생한 셈이고, 쇼트 포지션에서 자산 가격이 1%만 하락해도 역시 투자 원본의 100%에 상당하는 이익이 발생한다. 이처럼 레버리지의 이익 증대 효과는 막강하다. 그러나 롱 포지션에서 자산 가격이 오를 때 쇼트 포지션의 자산 가격도 동시에 올라 손실이 발생할 확률이 높으므로, 대차대조표 양편에서 이익과 손실이 상쇄되어 마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헤지 펀드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평가되어 있는 자산을 롱 포지션으로, 고평가 되어 있는 자산을 쇼트 포지션으로 가져가는데 이것이 바로 롱·쇼트 전략의 핵심이다. 시장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저평가된 롱 포지션의 자산 가격이 더 많이 오르고 고평가된 쇼트 포지션의 자산 가격이 덜 오를 확률이 높으므로, 롱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쇼트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반대로 시장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저평가된 롱 포지션의 자산 가격은 상대적으로 덜 빠지고 고평가된 쇼트 포지션의 자산 가격은 크게 빠질 확률이 높으므로, 롱에서 발생하는 손실에 비해 쇼트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충분히 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차대조표 양편에서 발생하는 손익이 상쇄되어 단위당 순이익은 높지 않지만, 레버리지로 투자 규모를 크게 키울 경우에는 투자 원본에 대해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롱·쇼트 전략의 노림수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과거 데이터의 집적과 분석에 의해 경험적으로 확률 추정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잘 작동하지만, 시장 사정이 과거 데이터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격심한 가격 변동에 처할 경우에는 꼼짝없이 헤지 펀드의 파산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레버리지를 크게 동원했기 때문에 그만큼 파산 위험도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이처럼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현상을 가리켜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고 한다. 실제로 서브프라임 위기 때 부동산 시장에서 과거 데이터로는 확률적으로 추정할 수 없는 희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고도의 수리 통계 모델을 사용했음에도 블랙 스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월스트리트의 금융 기관과 헤지 펀드가 큰 타격을 입었다.

 

■ 블랙 스완 ■

사람들의 키나 몸무게를 혹은 기대 수명의 분포는 종 모양으 정규 분포를 따른다. 평균치 주변에 표본들이 많이 밀집해 있고 평균을 벗어날수록 표본의 분포가 희박해지면서 발생 확률이 낮아진다. 이처럼 정규 분포상에서는 평균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는 극단적인 이상 값(outlier)이 출현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는 정규 분포로는 포착할 수 없는 이례적인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를 가리켜 통계학에서는 "길고 두툼한 꼬리(long fat tail)"가 형성되었고 말한다. '길고 두툼한 꼬리'란 확률 분포 곡선이 종 모양의 정규 분포 곡선과 달리 양쪽으로 길게 늘어지면서 두툼한 꼬리 모양을 띤다는 뜻이다. 이때 길다는 것은 평균에서 많이 벗어난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한다는 뜻이며, 두툼하다는 것은 그 발생 확률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레바논 출신의 수리 금융 전문가인 나심 탈레브(Nassim Taleb)는 「블랙스완(The Black Swan)」(2007)이란 저서에서 정규 분포를 중시하는 기존 통계학의 패러다임이 서브프라임 위기를 초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서구인들은 고니는 몸이 순백색인 백조로만 존재하며 흑고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는데 호주에서 흑고니가 발견되면서 오랜 통념이 깨졌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들의 제한된 경험에 안주해 사고하는 경향이 뚜렷하므로 경험적 예측의 범주를 벗어나는 블랙 스완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금융의 세계에는 정규 분포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급변동의 위험이 존재한다. 그리고 금융 시장에 출현한 블랙 스완은 대형 교통사고나 화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희생을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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