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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 시장에도 약간의 빈틈은 있다. 

 

시장의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전문 인력의 가치를 부정하는 시각과 전문 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장의 효율성이 달성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샌퍼드 그로스먼(Sanford J. Grossman)과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가 1981년에 발표한 「정보 효율적 시정의 존립 불가능성(On the Impossibility of Informationally Efficient Markets)」은 이렇게 상층되는 두 시각을 절묘하게 통합시킨 논문이다. 이들은 "시장의 균형이란 현실이 따라가는 이상향일 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고 선언했다.

이때 시장의 균형이 바로 효율적 시장을 의미한다. 두 사람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시장은 효율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잘못된 가격을 찾아내 비정상적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약간의 빈틈(slippage)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약간의 비효율이 존재해야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주어지며, 그래야 이들의 노력에 의해 시장이 균형을 향해 수렴해 갈 수 있다.

이처럼 시장이 아무리 효율적이라고 해도 약간의 빈틈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약간'이란 수식어에 주의해야 한다. 잘못된 가격을 찾아내는 것은 막대한 정보 및 조사 활동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따라서 이런 활동이 가능한 것은 우수한 인력에게 높은 연봉을 제공할 수 있는 규모가 큰 금융 기관뿐이다. 예를 들어 5억 달러의 자산을 운영하고 있는 중소 자산 운용사가 있다고 합시다. 이 자산 운용사가 애널리스트를 고용해 높일 수 있는 수익률이 약 0.1% 포인트라면, 이는 돈으로 환산해서 약 50만 달러다. 그런데 50만 달러를 모두 투입한다고 해도 우수한 팀을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며 자산 운용사들이 대형화하는 것이다.

 

■ 그레이엄의 입장 변화 ■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은 현대 금융경제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 투자론 분야의 최대 이론가이자 논객이었다. 투자업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으며 1934년 그가 컬럼비아 대학 교수였던 데이비드 도드(David Dodd)와 공저한 「증권 분석(Security Analysis)」은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월스트리트 인재들에게 필독서였다. 그는 치밀한 증권 분석으로 비정상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므로 오늘날의 효율적 시장 가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1976년 금융 투자업계의 한 세미나에서 흥미로운 연설을 했다. 

"나는 더 이상 정교한 증권 분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나와 도드가 같이 쓴 책이 나왔던 40년 전에는 의미가 있었지만 이후로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 시절에는 잘 훈련받은 애널리스트가 치밀한 분석을 통해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막강한 예산 지원을 받으며 경쟁적으로 리서치가 이뤄지고 있는 오늘날에는 그러하 노력에 지불된 비용 이상의 높은 성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는 오늘날 하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효율적 시장 가설을 지지한다." 

그러나 그레이엄의 연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같은 세미나에서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낼 수 있는 기법을 제시했다.

"나라면 순유동 자산 가치(net current asset value)를 밑도는 주식에 투자를 시도할 것이다. 즉 공장이나 설비와 같은 고정 자산에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며, 유동자산으로부터 총부채를 차감한 순유동 자산 가치에 주목할 것이다. 나는 이 간단한 잣대를 이용해 지난 30년 동안 매년 약 20%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단 이 방법은 개별 종목이 아닌 포트폴리오에 적용해야 한다."

 

이처럼 그레이엄은 개별 증권이 아닌 포트폴리오의 성과에 주목하는 등 현대 금융경제학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여전히 증권 분석의 연장선에서 투자 기법을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시장의 효율성을 제한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레이엄에게 있어 시장은 효율적이지만 여전히 전문 인력들이 가치를 창출할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기술적 분서과 근본적 분석이 설 자리는 없을까?

 

투자업계의 전문 인력들은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내 매입하고 고평가 된 종목은 매도하곤 한다. 사 둔 저평가 종목이 가격이 오르면 이익이 생길 것이고, 또 팔아 둔 고평가 종목이 가격이 내려가면 역시 이익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투자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어떤 종목이 현재 균형에서 이탈되어 있는지 찾는 것이며, 이를 위해 투자업계의 전문 인력들은 끓임 없이 기술적 분석(technical analysis)과 근본적 분석(fundamental analysis)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면 기술적 분석과 근본적 분석에서 효율적 시장 가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투자의 영역에서는 예전부터 과거의 주가 추이를 분석해서 얻은 경험적 지혜에 근거해 장래의 주가를 예측하곤 했다. 즉 사람들의 투자 심리에는 반복적이고 공통적인 패턴이 있으므로 주가 추이를 통해 주가 변동의 방향성을 예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예를 들면 "산을 세 번 경험하면 주가는 반드시 하락한다."와 같은 경험 법칙이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과거 주가를 차트로 분석해 장래 주가를 예측하는 기법을 가리켜 기술적 분석이라고 하며, 이런 부류의 예측 전문가를 차티스트(chartist)라고 한다.

 

그런데 기술적 분석이 성립하려면 주가의 움직임에서 특정한 패턴이 유지되어야 하므로 새로운 정보가 주가에 신속하게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기술적 분석의 이러한 전제 조건은 효율적 시장 가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술적 분석에서 많이 사용되는 심리적 저항선을 예로 들어 봅시다. 차티스트들은 어떤 회사의 주가가 상당 기간 9만 5000원대에 머물다가 현재 7만 2000원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면 이 주가가 다시 오른다 해도 9만 5000원을 뚫고 올라가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즉 9만 5000원이라는 심리적 저항선이 존재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차티스트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주식을 9만 5000원에 샀다가 주가가 떨어져 낭패를 본 투자자들이 많다. 이들은 주가가 간만에 9만 5000원에 가깝게 회복되면 바로 이 주식을 처분하고자 한다. 따라서 9만 5000원 근방에서 이 주식을 팔려는 매도세가 가앟게 형성되므로 이 주식의 주가는 결코 9만 5000원을 넘어서기 힘들다."라는 식이다. 

 

그러나 차티스트의 설명에는 논리적 하자가 있다. 만약 9만 5000원이 진정으로 심리적 저항선이라면 아무도 9만 5000원 근방에서 이 주식을 사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팔려는 매도세도 형성될 수가 없다. 팔려는 매도세가 성립하려면 사려는 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자도 9만 4000원에 이 주식을 사려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식을 산다는 것은 주가가 오를 가능성도 있고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믿을 때 가능한 것인데, 이 주식의 경우에는 떨어질 가능성만 있고 오를 가능성은 없는데 도대체 누가 이 주식을 사겠는가 따라서 9만 4000원에서 매도세가 형성된 것은 어디까지나 9만 4000원에 사려는 자가 있기 때문이며, 이들은 주가가 향후 떨어질 가능성이 있듯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9만 5000원 근방에서 주식의 매매가 이뤄진 것은 심리적 저항선의 존재를 부정하는 투자자가 많다는 증거다. 

 

이렇게 보면 효율적 시장의 관점에서 기술적 분석은 난센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기술적 분석이 여전히 트레이딩 현장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실무적으로는 우수한 전문 인력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트레이딩 규칙이 끊임없이 개발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규칙에 의해 누군가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 시장이 이러한 사실을 즉각 가격에 반영함으로써 더 이상 새로운 규칙이 발붙일 틈이 없어진다. 그러나 우수한 인력에 으해 또다시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까지 봉쇄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학문적으로는 행동 금융학(behavioral finance)이 발전하면서 시장에 비효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기술적 분석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말에 인터넷 거품(dot-com bubble)이 발생하고 2000년대 후반에는 서브프라임 거품이 발생했는데, 이런 거품현상은 그동안 금융경제학에서 전제로 삼았던 합리적인 투자자, 효율적 시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은 효율적이지만, 그럼에도 근면성, 총명성, 창의성에 대한 보상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절충적인 결론이 가능하며, 이는 기술적 분석에 숨통을 열어준다.

 

● 행동금융학의 높은 설명력 ●

행동금융학은 '합리적인 인간'을 부정한다. 인간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왜곡되게 해석하기도 하며, 설사 올바로 이해했다고 해도 다양한 심리적인 편향(biss)과 장벽(block)으로 인해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인간에 대한 행동 금융학의 이러한 관점은 주식 시장에서 관찰되는 여러 기현상(anomaly)을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주가의 추이를 관찰해 보면 단기적으로 힘을 모아 모엔템(momenturm)을 형성하면서 랠리(rally)를 이어 가다가 특별히 새로운 정보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반전(reversal)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은 분명히 효율적 시장 가설에 위배되는 기현상이다. 그런데 행동경제학에서는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에게는 과거의 한정된 경험에 큰 의미를 ㅂ여하는 편향성이 존재하며, 또 새로운 정보가 도착해도 관성에 의해 이를 거부하거나 그 함의를 천천히 수용하므로, 단기적으로 주가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모멘텀을 형성하다가 궁극적으로 반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행동 금융학은 기현상에 대한 높은 설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수미 일관성이나 엄격한 개념 정립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신생 학문 분야로서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술적 분석은 원칙적으로 효율적 시장 가설과 배치된다. 그러나 효율적 시장 가설은 근본적 분석의 타당성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근본적 분석의 한 예가 주가의 배당 가치 모델인데, 이 모델은 언뜻 효율적 시장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모델에 따르면 주가가 미래 배당 흐름의 현재 가치의 합계에 수렴하게 되는데, 이처럼 주가가 특정한 이론적 균형치에 수렴한다는 것이 효율적 시장에서 전제로 하는 주가의 랜덤 워크와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생각해 보면 주가가 어떤 근본적(fundamental) 가치에 수렴한다는 근본적 분석은 효율적 시장과 모순되지 않는다. 주식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주가가 근본적인 가치에 끓임 없이 수렴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가의 근본적인 이론 가치는 미리 확정된 것도 아니고 고정적인 것도 아니다. 끓임 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주가 배당 모형에서는 배당 흐름에 입각해 주가의 균형치를 추정하고 있는데, 이때 사용되는 배당 흐름은 과거의 배당 흐름이 아니라 미래의 배당 흐름이다. 따라서 효율적 시장 가설과 근본적 분석은 양립 가능하다. 주가가 랜덤 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근본적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뉴스를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므로, 주가가 랜덤 하게 움직인다는 것이 오히려 근본적 분석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금융 거품조차 근본적 분석으로 설명 가능하다. ▶

거품의 발생과 파열은 효율적 시장을 신봉하던 금융경제학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시장의 급변동을 설명할 만한 예기치 못한 사건의 발생이 있어야 거품의 발생과 파열을 설명 할 수 있는데 마땅한 사건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금융 거품이 발생하는 것은 시장 비이성적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으며, 그에 따라 행동 금융학의 입지도 넓어졌다. 미국 나스닥 지수는 1995년부터 6년간 무려 여섯 배 증가했는데, 이를 두고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고 지창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근본적인 관점에서 거품을 설명할 수 있다는 변론도 제기된다. 간단한 수치를 예로 들어 본다. 주식 가치를 평가할 목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고든 성장 모델을 이용해 주식 시장 전체의 시가 총액을 추정할 수 있다. 인터넷 거품이 최절정에 가까웠던 2000년 S&P 500 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현금 배당액은 총 1억 5460만 달러였다. 당시 모두가 낙관적이었으므로 배당금의 기대 성장률(g)이 8%이고 할인율(k)이 9.2%라고 간주했다면, 이들 두 수치를 고든 성장 모델인 ‘V₀=D₁/(k-g)’에 입력해 시가 총액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추정하면 약 128억 8300만 달러가 나오는데, 이 수치는 2000년 당시 S&P 지숭 포함된 기업들의 시가 총액과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이후 투자자들의 전망이 약간 어두워져 배당 성장률이 8%에서 7.4%로 떨어졌다고 가정하고, 이 수치를 고든 성장 모델에 대입하면 시가 총액의 추정치는 85억 8900만 달러로 감소한다.

그런데 이 추정치는 놀랍게도 2002년 10월 거품이 파열한 후 S&P 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시가 총액과 일치한다. 이상의 수치 예가 의미하는 바는 배당 성장률을 8%에서 7.4%로 약간 낮추는 근본적 분석만으로도 거품의 발생과 파열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근본적 분석이 놀라운 설명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거품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이 비이성적이라고 단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바에 따르면 효율적 시장 가설에 대한 올바른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즉 시장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합의가 존재한다. 그러나 시장의 효율성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전혀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있는 금융 기관은 전문 인력을 활용해서 기술적 분석과 근본적 분석을 실시해 균형에서 벗어나 있는 종목을 찾아내기 위해 끓임없이 노력하며 이런 노력에 의해 투자의 수익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어디까지나 기대에 입각한 것일 뿐 보상이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금융경제학이나 금융공학에 대해 잘못된 기대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대량의 데이터를 사용해 복잡한 계량 모델을 출출하다거나 미분 방정식, 확률 분포 함수, 마팅 게일(martingale) 확률, 복잡계 등과 같은 어려운 개념을 사용하면 뭔가 신통력이 있을 것으로 사람들은 착각한다. 그러나 금융경제학과 금융공학은 결코 미래를 예측하는 신통력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이들을 공부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불필요한 손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즉 합리적인 투자의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분산 투자의 원리는 위험을 전체적으로 파악해 회피할 수 있는 위험과 그렇지 않은 위험을 구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또 위험 회피를 위해서는 선물, 옵션, 스와프와 같은 파생 금융 상품을 활용할 수도 있다. 금융공학은 이러한 신종 금융 상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지 시장의 선행을 예견함으로써 시장을 압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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