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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와 관련한 투자은행의 역할

 

지금까지 매도 측의 입장에서 투자은행이 어떻게 일을 진행하는지 설명했다. 매도 측뿐 아니라 매수 측도 투자은행을 고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때 투자은행의 역할도 매도 측 자문과 유사하다. 우선 고객 기업이 인수 합병으로 사업 규모를 키우길 희망하면, 투자은행은 표적 기업을 물색하고 인수 합병이 고객 기업의 주주 가치를 올리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 그리고 매수 전략을 어떻게 세우는 게 좋을지 제안한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사례처럼 매도 측에서 공개 입찰 방식을 선택하고 티저를 발송해 매수자를 찾을 경우에는 고객 기업이 상세 정보 보고서를 입수한 단계에 투자은행이 자문사로 참여한다.

어떠한 단계에서 참여하건 투자은행은 매수 기업의 입장에서 본 매수 안건이 매수 기업의 경영 전략에 합치되는지, 그리고 주주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검토한다. 즉 매수 후 주주 가치가 어느 정도로 예상되므로 어떤 수준의 매수 가격이 적정한지 추정한다. 

 

또 매수로 인한 리스크도 평가한다. 예를 들어 매수로 인해 차입금이 증대해 신용 등급이 저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주식 교환 방식으로 매수하는 전략도 검토한다. 매물이 하나의 사업부가 아니라 하나의 회사인 경우 매수 기업은 자사의 주식을 발행해 매물의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투자은행은 매수 후 주당 이익(earnings per share, EPS)이 증대할지 아니면 감소할지를 중요하게 따져야 한다. 이처럼 투자은행은 매수 안건이 매수 기업의 주주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매도 측과 매수 측이 최종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양측은 여러 측면에서 교섭을 벌인다. 예를 들어 매각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경영자, 중간 관리자, 종업원을 그대로 승계할 것인지, 노동조합과의 문제는 없는지, 원료 공급선이나 거래선을 그대로 인수인계할 것인지 등 다양한 협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종류의 교섭은 자문 팀을 활용하지 않고 당사자 간에 직접 진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자문 팀이 중간에 개입하면 완충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으며 풍부한 교섭 경험을 토대로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건 협상에서 최대의 장점은 가격이다. 매도 측과 매수 측 간에 가격 차이가 10배 이상 벌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사실 매도 가격이든 매수 가격이든 이를 산정하는 방법은 장래 이 사업이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금 흐름을 현재 가치로 할인해 합산하는 것이다. 

현재 가치로 할인 한다는 것은 장래의 예상치를 근거로 하는 것이므로, 이처럼 예상에 있어 큰 괴리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중간의 완충 역을 수행하는 투자은행은 도대체 괴리가 어떠한 관점 차로 인행 생기는 것인지, 즉 매도 측과 매수 측이 현재 가치를 추정하기 위해 사용한 모델은 서로 전제 조건(가정)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체계적으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자칫 감정싸움으로 비화할 수 있는 가격협상을 논리와 쟁점의 대결로 치환한다. 

그 결과 쟁점이 명확해지고 상호 간의 큰 차이로도 좁혀져 교섭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다.

 

기관 투자의 대명사, 펀드

 

국내 증시에 투자 모멘텀이 형성된 것은 대략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기이다. 이때부터 개인 투자자들이 개미 군단을 형성해 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주식 투자에 '올인'하는 데 이 트레이더(day trader)도 등장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가 발발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고 단독 플레이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 이후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분산 투자의 장점을 살린 펀드였다. 마침 저금리 시대가 오면서 은행 예금보다 수익성이 높은 펀드에 관심이 쏠렸다. 또 자본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중국, 베트남, 동유럽 등 신흥 산업국에 투자하는 해외 투자 펀드, 일시불로 가입하는 데 따른 부담을 덜고 매월 소득의 일부분을 적립시켜 투자 원본을 키워가는 적립식 펀드, 보험료의 일부를 증권에 투자한 후 운용 실적을 계약자에게 돌려주는 변액보험도 등장해 펀드의 대중화에 기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펀드의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노후 준비를 위한 재테크가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한 것도 한 이유이고, 동시에 인구 감소로 주택 수요가 점차 줄면서 그동안 부동산 시장에 몰리던 재테크 자금이 자본 시장으로 대거 이동할 가능성 또한 높기 때문이다.

 

펀드 시대가 열리다.

 

펀드는 1868년 영국에서 설립된 '외국 및 식민지 정부 신탁(Foreign & Colonial Governmetn Trust)'이 기원이다. 이는 당시 고도로 자본이 축적된 영국에서 미국, 인도 등지에 투자할 목적으로 조성된 해외 펀드였다. 그러나 펀드가 대중화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경과된 1970년대 이후의 미국에서다 1977~1997년의 20년간 미국에서 펀드 자산 잔고가 무려 100매 증대했으며, 그 결과 미국인이 보유한 개인 금융 자산에서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20%에 달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펀드가 크게 성장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1980년대 초부터 20년간 주식 시장이 장기 호황을 누리는 가운데 펀드 상품이 투자자의 입맛에 맞게 혁신을 거듭한 것이 가장 주된 이유이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MMMF이다. MMMF는 단기 국채(TB), 양도성 예금 증서(CD), 상업 어음(CP) 등 단기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뮤추얼 펀드인데, 은행 예금계좌와 연결되어 공과금의 납입, 신용카드 결제와 같은 소액 지급 결제 서비스도 제공했다. 이처럼 MMMF는 은행의 예금과 달리 시장의 수익률을 제공한다는 장점 외에도 은행 예금만의 고유한 강점으로 여겨지던 소액 지급 결제 서비스를 제공했으므로 투자자들 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은행 예금을 대체했다.

 

이 외에도 펀드의 가입 수수료(loading fee)가 크게 낮아지다 못해 아예 가입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 펀드(no load fund)까지 등장한 것도 펀드의 성장세에 기여했다. 또 대형 자산 운용사들이 대형주 펀드, 첨단주 펀드, 공사채 펀드 등 다양한 펀드 상품을 하나의 패밀리(family)로 묶어 팔기 시작했는데, 같은 패밀리에 속한 펀드 상품 간에는 추가 비용 없이 갈아타는 것이 가능해 투자자들에게 인기 높았다. 근로자들의 노후 대비 저축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401(k) 연금 계획★이 제도화되자 근로자들이 펀드 패밀리에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펀드 패밀리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오랜 기간 펀드 시장에 묶어 둘 수 있다는 측면에서 펀드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 401(k) 연금계획 ★

미국의 확정 기여형 퇴직 연금 제도를 말한다. 기존의 정부 주도 연금 제도가 지급불능 위기에 빠지자, 회사와 근로자가 급여의 일정 비율을 퇴직 시까지 각출해 적립하는 방식의 연금 제도가 도입돼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이때 근로자는 적립금의 투자·운용 상품을 직접 고를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손익의 가장 큰 특징은 세제 혜택이다. 해당 근로자의 소득세를 계산할 때 이 적립금이 과세 표준에서 제외되며, 나중에 연금을 찾아서 쓰는 시점(사실상 근로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때라 세금 부담이 줄어드는 시점)에서 과세 대상이 된다. 그러나 미국의 주식 활황기에 자산의 연금을 회사 주식에 묶어 두었던 근로자들 주에는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연금을 모두 날린 이들이 많다.

 

이런 이유로 펀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펀드 자본주의(fund capitalism)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펀드가 기관주주로서 기업 지배 구조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빗댄 말이다. 사실 개인 투자자가 많던 시절에는 주주들이 원자화, 파편화되어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펀드의 발전으로 주주들이 기관화되어 경영자에게 주주 가치를 높여 달라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로써 과거의 주주가 침묵하는 주주(quiet shareholder)였다면, 오늘날의 주주는 행동하는 주주(activist shareholder)로 바뀌었다. 펀드는 운용 자산의 규모가 크므로 얼마든지 주주로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 사진을 교체하거나 최고 경영자를 퇴진시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외환 위기 이후 외국계 펀드들이 많이 들어와 국내 유력기업이나 금융 기관의 지분을 인수한 경영에 개입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없지 않지만 금융 경제학에서는 펀드의 적극적인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가 기업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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