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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좋은 회사가 좋은 투자 대상은 아니다.

 

도대체 투자은행은 어떤 곳에 투자를 할까? 잘 나가는 기업에 투자할까, 아니면 허접스러운 기업에 투자할까? 둘 다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내 투자하는 것이다. 1997년 우리나라에서 외환 위기가 터졌을 때 금융 기관의 부실 자산이 심각한 문제를 떠올랐다.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부실 채권이 금융 기관에 쌓여 자기 자본을 잠식함으로써 금융 기관의 생존을 위태롭게 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 부실 채권을 사겠다고 나선 자들이 바로 미국 투자 은행들이라는 사실이다. 

투자은행들이 판단하건대 한국의 부실 채권은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었다. 미증유의 위기로 인해 한국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되어 채무 불이행 위험에 비해 부실 채권 값이 너무 떨어져 있었단 것이다. 따라서 이를 헐값에 매입해 두었다가 한국 경제가 회복된 후 다실 팔면 손쉽게 자본 이득을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투자은행이 중시하는 것은 남들과 다른 통찰력을 갖고 투자 대상을 찾는 것이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같이 경영 성과가 높고 누구나 좋은 회사(good company)라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이미 주가가 충분히 올라 있어서 좋은 투자 대상(good investment)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시장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것보다 실제 더 양호한 회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부실기업이지만 시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부실한 기업을 찾아낸다면 이 역시 훌륭한 투자 대상일 수 있다. 이처럼 투자은행은 사람들의 식견 부족으로 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투자 대상을 찾아내 직접 자기 명의로 투자한다.

 

투자은행의 M&A 접근 방식

 

■ 기업 가치의 관점

"디지털 드림 키즈(Digital Dream Kids)" 라는 비전을 내걸고 1995년 소니(Sony)의 사장에 취임한 이데이 노부유키는 2005년 회장직을 사임할 때까지 10년간 소니의 주주 가치(시가 총액)를 거의 높이지 못했다. 반면 IBM의 루이스 거스트너(Louis V. Gerstner. Jt) 전 회장은 종래의 메인프레임(대형 범용 컴퓨터) 위주로 하드웨어를 계속 팔아서는 IBM이 가치를 창조할 수 없다고 보고 IBM의 사업 내용을 하드웨어로부터 소프트웨어로 대대적으로 전환했다. 그가 재임한 9년 동안 IBM의 주주 가치는 무려 열 배나 올랐다. 거스트너는 어떻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 답은 인수·합병이다. 그는 투자은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재임 기간 중 연평균 10건에 달하는 인수·합병을 성사시켜 IBM의 사업 구조를 대대적으로 전환했다.

주식 시장은 주주 가치에 입각해 변혁을 요구한다. 주식 시장이 평가하는 것은 기업이 주주를 위해 어떻게 얼마나 가치를 창조하고 있는 것인가일 뿐, 매출액이나 종업원 수와 같은 조직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투자은행의 역할이 등장한다. 투자은행은 기업의 가치 창출이라는 '해도(海圖) 없는 항해(uncharted voyage)'에서 나침반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기업가치를 산출하고 평가하는 실무에 숙달되어 있고 투자자가 기대하는 것, 즉 주식 시장이 바라는 것을 잣대로 기업의 진로 찾기에서 교량 역할을 수행한다.

 

한 회사에서 투자은행의 자문 팀이 방문했다고 가정합시다. 모두 젋은 스태프이고 몸에 잘 맞는 고급 양복과 구두를 착용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약 한 시간 동안 설명회를 가졌는데 컬러로 인쇄된 50쪽 분량의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회사의 현황이 잘 분석되어 있다. 그리고 발제자는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왜 회사의 주가가 오르지 않는지, 저주가의 상황을 왜 우려해야 하는지 논리 정연하게 설명했다.

기업과 투자은행의 접점은 이처럼 기업 경영 분석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시작된다. 때문에 투자은행은 세련되고 깔끔한 이미지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 차트를 세로 방향으로 할 것인지 가로 방향으로 할 것인지, 그래프의 위치를 어디에 들 것인지, 그래프의 바탕색과 막대 색깔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까지 세심한 신경을 쓴다.

 

◆ 다섯가지 관점의 기업 분석 ◆

그러면 투자은행이 발표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이들의 발표는 어떻게 하면 고객 기업이 주주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 대체로 다음의 다섯 가지 관점에서 기업을 분석한다.

첫째, 매출액에 비해 이익이 제대로 나오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수익성을 평가한다. 특히 매출액에 비해 수익성이 낮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파고든다. 이를테면, 경쟁사에 비해 매출액은 50%나 높은데 영업 이익은 절반에 불과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분석한다. 이때 경쟁사는 단지 국내 기업만이 아니라 홰외 경쟁사까지 당연히 포함한다.

 

둘째, 이익 잠재력이 높은 성장 분야에 경영 자원을 집중하고 있는가의 관점에서 성장성을 평가한다. 본업의 성장성은 지속 가능한 것인지, 본업 외에 새로 뛰어든 사업은 성장 잠재력이 있는지, 하나씩 분석한다.

 

셋째, 고객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지 평가한다. 예를 들어 업계 1위의 지위를 놓친 원인이  무엇인지, 경쟁사와 시장 점유율 차이가 10% 이상 벌어진 이유는 무엇인지, 혹 기술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분석한다.

 

넷째, 주주 가치의 관점에서 고객 기업을 분석한다. 각 사업 부문은 어느 정도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어느 분야가 기여도가 가장 높은지 분석한다. 또 각 사업 부문의 가치를 합계한 것이 시장에서 평가된 주주 가치와 같은지, 그렇지 않다면 왜 차이가 발생하는지 규명한다.

 

다섯째, 투자자 관점을 도입한다. 현재 주주로서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펀드는 어떤 곳인지, 세계 유력 기관 투자자와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 분석한다. 예를 들어 캐피털, 퍼트넘(Putnam), 피델리티(Pidelity) 등 우량 펀드가 투자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기에 주식을 대량 매도할 가능성이 높은 헤지 펀드가 투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한다. 또 고객 기업의 주가 이익 배수(price-earnings ratio, P/E ratio)가 경쟁사에 비해 높은지 낮은지에도 주목한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문제점이 정확히 드러나면, 투자은행은 어떻게 주주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투자은행은 이처럼 자본 시장의 관점에서 고객 기업을 분석하고, 어떻게 주주가치를 높일 것인가에 중점을 두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세 가지 사업 부문에 종사하고 있는 한 가상 기업을 예로 들어봅니다. 이 기업은 주식 시장에서 2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때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이 가치가 어디로부터 오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다. 분석의 시작은 세 가지 사업부문 중 이익이 나는 부문과 손실이 발생하는 부문을 따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정보는 프로만이 입수할 수 있는 특수한 정보도 아니고 기밀도 아니다. 공시되어 있는 유가 증권 보고서만으로도 얼마든지 분석 가능하다. 공표된 수치에 따르면 이 기업이 화사 전체로 거둔 현금 흐름이 1500억 원 원인데, 이를 B 사업과 C 사업이 전적으로 벌어들이고 있고, A 사업은 30억 정도 적자다. 이 회사는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답은 B 사업과 C 사업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적자 사업인 A 사업에서 철수하고 그로부터 얻은 경영 자원(사람, 설비, 재원)을 유망 사업인 B와 C에 투입하는 것이다. 한편 더 적극적으로는 유망 사업 분야에서 인수 합병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 사업 철수 방식 ●

마침내 이 회사가 A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단을 내렸다고 합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만일 회사가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파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폭넓게 매수 후보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공개경쟁 입찰 방식을 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기업을 팔 때의 경매 방식은 소더비(Sotheby's)나 크리스티(Christie's)에서 고가 예술품을 경매에 부치는 것과는 다르다. 최대한 높은 가격을 얻고자 경쟁 입찰을 추진한다고 해도 매각 사업의 내부 정보를 아무에게나 마구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매도 측의 기밀을 최대한 지키면서 가급적 많은 매수 후보자를 모집해야 하므로 애기를 건넬 만한 매수 후보자를 어떻게 물색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자문 수수료가 비싼데도 투자은행을 이용하는 것이다. 유력 투자은행의 강점은 우수한 애널리스트를 확보하고 업종별로 정보를 조직적으로 축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매각 대상이 액정 사업이라면, 투자은행은 이 업종을 모니터하는 애널리스트를 뉴욕, 런던, 도쿄, 서울, 베이징, 상하이, 타이베이, 실리콘벨리 등 세계 반도체 산업의 주요 거점에 배치하고, 이들 간의 상호 긴밀한 네트워킹을 통해 고도화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한 고객기업이 액정 사업에서 철수하고자 한다면, 투자은행은 액정을 주력으로 하거나 관심이 많은 대만이나 한국 혹은 중국 기업을 찾아내 매입 가능성을 내부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볼력이 바로 유력 투자은행의 강점이다. 국내 금융기관이 아무리 투자은행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내걸어도 기업들이 인수·합병 안건을 의뢰하기를 꺼리는 까닭은 일차적으로 정보력의 한계 때문이다. 매수 후보 기업을 은밀하면서도 정확하게 물색할 능력이 없는 금융 기관에 누가 매각 안건을 맡기겠는가? 진정 투자은행을 키우려면 해외 곳곳에 거점을 확보하고 현지의 다양한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최상위 레벨의 정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한편 사업으로부터 철수하고자 하는 기업은 매각 가격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다른 점에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사업 철수의 소문이 퍼져 노동조합이 크게 동요하거나 혹은 거래선 업체들이 불안해하는 사태가 빚어지면 낭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매도 측이 기밀 엄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에는 공개 입찰 방식이 아니라 매수 후보 기업을 서너 개로 압축하고 이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방식으로 극비리에 교섭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또 고객 기업이 완전한 철수를 희망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액정 사업을 중핵 사업으로 키울 정도로 막대한 투자를 감당할 여력은 없지만, 그렇다고 중요한 사업 기반인 액정 사업에서 전면 철수할 생각은 없다." 라며 고민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때의 대안은 매각이 아니라 전략적 제휴다. 이럴 때는 협력할 의사가 있는 경쟁사를 찾아내 합작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구체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면 공개 입찰 방식으로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이 났다고 합시다. 실무적으로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매각이 추진되는 것일까? 우선 매도 측은 투자은행을 매각 자문사로 선정하고, 투자은행과 합동 자문 팀을 구성할 법률 회사(law firm)와 회계 법인을 선임한다. 이로써, 재무, 법무, 회계 전문가가 모인 자문 팀이 구성되는 것이다. 이들은 매각 사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목적으로 예비 실사를 실시하는데, 이를 가리켜 듀 딜리전스(due diligence) 라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투자은행은 어느 정도의 가격으로 매각하는 것이 절절한지, 고객 기업이 희망하는 가격이 무리한 것은 아닌지 예비적 판단을 내린다.

이어서 투자은행은 매수 후보 기업 리스트를 작성한다. 고객이 조심스러워할 경우에는 바로 공개 입찰로 가지 않고 정보 네트워크를 가동해 세계 각지로부터 후보 기업을 물색하며 이들 후보 기업에 대해 고객 기업이 불편해하지 않는지 파악한다. 이렇게 매수 후보자 리스트가 확정되면, 투자은행은 고객 기업의 방해를 구한 후 이들 후보자에게 '티저(teaser)'라고 불리는 간단한 문서를 배포한다. 티저란 통상 A4 용지 2~3매 분량으로 매각 대상 사업의 개요를 정리한 문건을 말한다. 티저에 매각 기업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매수 후보 기업이 관심을 보이면, 투자은행은 매수 후보 기업과 기밀 엄수 계약(confidentiality agreement)을 체결한 후 미리 준비해 둔 통상 A4 50~100매에 달하는 상세 정보(information package)를 제공한다. 이를 검토한 후 매수 후보자가 본격적으로 매수 프로세스를 밟고 싶다는 의향을 보이면, 투자은행은 대체로 어떤 정도의 가격으로 매수할 의향이 있는지 예비적 매수 희망 가격을 토대로 투자은행과 매각 기업은 후보자의 범위를 소수로 압축하며 최종적으로 2~3사를 듀 딜리전스에 초청한다. 

듀 딜리전스를 위해 투자은행은 데이터 룸을 설치하고, 매수측의 자문 팀을 초청해 실사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지원한다. 데이터 룸은 보안 유지를 위해 매도 측의 법률 자문사 혹은 회계 자문사 사무실을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을 빌리기도 한다. 매수 측 자문 팀은 데이터 룸을 방문해 매각 사업의 회계 장부, 계약 서류, 제조 및 판매 실적 데이터 등을 일일이 검토한다. 이 단계에서 매각 기업의 경영자가  매수 후보자를 만나 사업의 강점이 무엇인지, 장래 이익 전망은 어떤지에 대해 설명을 하는 등 매수 후보자의 질문에 답하기도 한다. 최종 매수 후보자는 이들 자료와 정보를 검토한 후 자문팀과 협의해 최종 입찰에 참여할 것인지, 최종 입찰 가격을 얼마로 할 것인지, 기타 매수 조건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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