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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경제-중앙은행에 맡겨진 역할

 

오늘날 세계 각국에는 중앙은행이 존재합니다. 한국은행, 연방준비제도, 영국은행, 일본은행(BOJ), 인도준비은행(Reserve Bank of India, RBI)이 있습니다. 중국 덩샤오핑에 의해 개혁·개방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 1979년에 중국인민은행(中國人民銀行, PBC)을 설립했으며, 유럽에는 유럽연합(EU)의 가맹국 중 16객국이 유로' 라는 지역 공동 통화를 도입하고 이를 관리할 목적으로 1998년 유럽 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을 창설했습니다.

 

※ 중국인민은행의 뿌리는 1948년에 설립된 모노뱅크(monobank, 단일 은행)입니다. 모노뱅크란 과거 공산권 국가에서 민간 은행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의 국유 운행이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의 역할을 동시해 수행했던 형태를 말합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의 과정에서 이 모노뱅크를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으로 분리했습니다. 현 중국의 4대 국유 상업은행은 바로 모노뱅크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입니다.

 

정부의 은행, 은행의 은행

 

중앙은행은 우선 정부의 은행입니다. 중앙은행은 정부의 국고 출납(세입과 세출)을 관리함과 동시에 정부의 재정을 보전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중앙은행은 대차대조표의 자산 면에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중앙은행이 국채 투자자로서 정부 적자 재정의 일부를 보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앙은행은 은행의 은행으로서 금융 시스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민간 은행들에 지급 준비 계좌를 창설해 주고 중앙은행 전산망을 구축해 은행들 간의 지급 결제 인프라를 지원합니다. 

또 은행들의 필요에 따라 담보 대출 혹은 레포(repo) 방식의 대출을 제공하며, 특히 은행이 비상사태에 처해 있을 경우에는 담보없이 특별 대출을 제공하는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합니다.

 

※ 레포(repo)란 환매 조건부 매출(repurchase agreement)의 준말입니다. 금융 기관이 일정 기간 후 확정 금리를 보태어 되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인데, 외견상의 약정 내용은 이렇지만 실제 내용은 채권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중앙은행은 자국의 환율 정책에도 깊게 관여합니다. 자국 통화의 환율이 과도하게 절상되어 있거나 절하되어 있을 경우 환율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외환 시장 조작(foreign exchange marker operation)을 실시합니다. 대차대조표의 자산 면에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직접 운영하거나 정부 부처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의 운용 책임을 맡아 수시로 외환 시장에 개입하는 방식을 통해서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당시의 사정을 살펴보면 1880~1896년에 미국 물가는 무려 23%나 하락했습니다. 경기가 침제되어 물건 값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디플레')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농업국이었으므로 농민의 타격이 컸습니다. 특히 중서부 농민들은 동부의 대형 은행으로부터 부채를 끌어다 쓰고 있었는데, 디플레 현상으로 농가의 수입은 주는데 부채는 줄지 않았으므로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이렇게 농가 사정이 날로 악화하는 반면, 은행은 점점 부를 키워 날로 비대해졌으므로 사회적 불만이 비등했습니다.

 

그러자 민중주의를 표방하는 농촌지역 정치인들이 은화의 자유 주조를 허용하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금본위제하의 미국은 금의 공급량에 의해 통화량이 결정되고 물가수준도 정해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금의 공급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디플레가 발생했습니다. 농촌의 민중주의자들은 금화 외에 은화를 사용하게 되면 저절로 통화량이 늘고 물가 수준도 정상적으로 올라가 농민의 채무상환 부담이 줄어들리라 내다본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금과 은을 모두 인정하는 양본위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1890년대 미국 정치의 핵심 사안으로 떠 올랐습니다.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것이 최대 쟁점이었고 민중주의 노선을 따르던 민주당의 월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인간을 금 십자가에 못 박아서는 안된다."라고 외치며 금본위제를 성토했습니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대선에서 대패했고 민중주의자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믹국은 금본위제를 고수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후 통화량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 디플레가 인플레로 바뀌면서 농민의 사정이 다소 좋아졌습니다. 1898년 캐나다 클론다이크강 유역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금이 대량으로 공급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해 통화량이 적게 공급되면 마치 구속복(strait jacket)을 입은 것처럼 몸을 움직이기가 여의치 않아 경제 활동이 위축됩니다. 반대로 통화량이 과도하게 공급되면 인플레가 발생해 경제 안정이 훼손됩니다. 이처럼 통화량의 적절한 공급은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오늘날 중앙은행의 핵심기능은 통화량의 공급과 조절입니다. 즉 중앙은행이 역사적으로 태동한 것은 정부의 은행 또는 은행의 은행이라는 기능이 필요했기 때문이지만, 통화 제도가 금은에 근거하지 않는 관리 통화 제도로 이행하면서 통화량의 조절이 중앙은행의 가장 중심적인 역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통화량 조절이라는 까다로운 과제

 

금본위제나 은본위제를 실시했던 시절에는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지폐는 원칙적으로 금이나 은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했으므로, 광산의 발견이나 채굴이 부진해 금은의 공급량이 부족하게 되면 통화 공급이 줄었고 실물 경제의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 불황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화량 부족 문제는 관리 통화 제도가 등장함으로써 근본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중앙은행이 금의 구속에서 벗어나 불환 지폐 형태로 법화를 자유자재로 발행하는 관리 통화 제도로 전환한 것은 1930년대부터 입니다. 관리 통화 제도는 1923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주창한 것입니다. 이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중앙은행은 실물 경제의 움직임에 맞춰 통화량을 신축적이고 기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른바 통화 신용 정책이란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관리 통화 제도하에서 중앙은행은 자국의 법정 통화인 은행권을 발행하며, 동시에 일반 상업은행들로부터 당좌 예금의 형태로 지급 준비 예금을 수취합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은 현금 통화로서 한 나라 내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며, 중앙은행에 예치된 상업은행의 지급 준비 예금은 신용 창조의 메커니즘을 통해 예금 통화를 창출합니다.

 

이처럼 중앙은행은 한 나라의 통화량, 즉 현금 통화와 예금 통화를 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즉 중앙은행은 발권 은행으로서 현금통화를 발행하는 외에도 지급 준비 예금을 쌓도록 상업은행을 규제함으로써 예금 통화의 창출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 정책은 통화의 신뢰도, 나아가서는 경제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각국 중앙은해에는 인플레 억제라는 정책 목표가 부과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관리 통화 제도하에서 중앙은행이 과도하게 통화량을 공급함으로써 물가의 앙등을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으미합니다. 그동안 통화량의 많고 적음이 물가 수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실증 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으므로, 중앙은행은 실물 경제의 성장에 맞춰 적정 통화량을 공급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고 있는 셈입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언급이 언론에 자주 나오는데, 이는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과다 공급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정치권은 속성상 선거를 앞두고 경기 호조를 연출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 빠져 준정부 기관인 중앙은행을 압박해 통화량을 과도하게 공급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이 덩달아 임금을 올리고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서 경제 전체적으로 인플레 기대 심리가 만연하게 되고, 이것이 현실화되어 물가를 불안하게 하면서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에는 시간 불일치(time inconsistency)의 문제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물가 안정이 좋다는 것을 잘 알지만 단기적인 정치 목표로 인해 장기를 희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국민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통화 정책을 국민에게 아무런 설명 책임(accountability)을 지지 않는 일부 엘리트 집단이 맡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입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화 신용 정책에 관한 책임과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나 의회에 주어져야지 중앙은행에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공적인 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감을 반영한 것입니다. 중앙은행은 공공의 이익(pubic interest)을 추구하는 공적 조직체의 외양을 지니지만 사실상 중앙은행을 움직이는 것은 극히 관료화된 내부의 전문인력들이며, 이들의 관심사는 조직의 힘과 영향력을 키워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중앙은행과 정부 간의 정책 충돌 문제도 심각합니다. 경제 정책의 목표에는 물가 안정뿐 아니라 경제 성장과 발전, 완전 고용의 달성, 국제 수지의 균형 등 여러 목표가 존재하는데, 통화 신용 정책에 관한 권한을 전적으로 중앙은행에 부여할 경우 다양한 정책 목표 간의 부조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세는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을 지지하는 쪽입니다. 왜냐하면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를 적절히 견제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물가 안정을 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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