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은 분권형 중앙은행이다.

연준은 분권형 중앙은행이다.

 

미국 달러화는 세계적으로 가장 통용성이 높은 기축 통화이며 미국의 금융 시장은 세계 금융 시장의 중심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중앙은행 제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 중앙은행인 연준은 '분권화된 중앙은행' 이란 톡특한 형태를 띱니다. 다른 나라처럼 집권화된 하나의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 전역 12개 지구에 흩어져 있는 12개의 연방준비은행을 워싱턴에 소재한 연준 이사회가 총괄하고 있는 형태입니다. 이렇게 이중 구조가 형성된 것은 1907년 니커보커 위기를 겪으면서 중앙은행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했지만 그 설립 방식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마다 생각이 달라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 경제는 대형 은행과 대기업이 자본가의 축을 형성하고 지방의 농업 종사자들이 생활자의 축을 형성하면서 의견이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대자본은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민간 주도의 중앙 집권적인 중앙은행을 원한 반면, 농업 종사자들은 뉴욕의 대형은행들이 모든 것을 쥐고 흔들지 못하도록 공적 성격이 강한 지방 분권형 중앙은행 체계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지방 분권적이면서도 중앙 집권적이고, 공적인 국가 기구이면서도 민간 은행들이 공동으로 자본을 출자하는 민간적 특성을 갖는 중앙은행 체계가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연준의 최상위 기구는 이사회(Board of Governors)입니다. 연준 이사회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승인한 이사들로 구성됩니다. 이사의 수는 의장을 포함해 7명밖에 안 되지만 이사회는 일반 기업체 이사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방대한 규모의 조직입니다. 이사회를 지원하는 상근 인력이 무려 2000명에 달하고 연간 예산이 약 3억 달러입니다. 대통령에겐 연준 이사회 이사를 선임하는 권한이 있지만, 그렇다고 백악관이 연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연준이사의 임기가 무려 14년으로 톡립성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7명의 이사 중 한 사람이 바로 연준의장입니다. 의장의 임기는 4년이고 연임이 가능합니다. 한 예로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1987년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 때 의장이 된 이후 '아버지' 부시(George .H.W. Bush), 클린턴(Bill Chinton), '아들' 부시(George H.Bush)로부터 계속 지명을 받아 18년간 의장직을 연임했습니다. 연준 의장은 직책상 연준의 직원들을 관리하고 이사회를 주재하며 정기적으로 의회에서 통화 신용 정책에 대해 증언해야 합니다. 따라서 의장이 이 방대한 조직을 일상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의장은 일상적인 일은 이사 중에서 한 사람을 지정해 총괄 책임을 맡기고, 주로 비정형적인 일, 즉 정치권이나 여론이 큰 관심을 갖는 특별한 사안에 집중합니다.

그렇다고 연준 의장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법률상 연준 의장의 권한은 이사회 의제를 설정하는 것에 국한되고 다른 모든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이사들과 마찬가지로 한 표를 행사할 뿐입니다.

 

 

 

 

 

연준의 역할은 술판 깨기

 

연준은 해마다 두 차례 통화 신용 정책에 대해 의회에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정적으로 자립해 있어 의회에 매달릴 이유는 없습니다. 연준은 대차대조표의 차변에 국채를 위시한 수익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운용해 얻은 수익으로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정치인들에게 연준은 불편한 존재입니다. 연준의 최대 목표는 인플레를 억제하는 것이고 경기 호황이 이어지면 늘 인플레에 대비해 기준 금리인 연방 기금 금리(federal funds rate)를 올린다는 것이 기본 입장입니다. 즉 연준의 역할은 파티가 한참 흥겨워지면 술판을 깨는 것입니다.

 

연준이 하는 역할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은행을 감독해 은행 시스템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역할은 주로 12개 지구에 산재해 있는 연방준비은행이 수행합니다. 이 역할과 관련해 연준은 은행들의 재무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은행 간의 대차 거래를 매개하며 유사시에는 최종 대부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 역할과 관련해 연준은 은행들의 재무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은행 간의 대차 거래를 매개하며 유사시에는 최종 대부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즉 자금난에 처한 은행에 비상 대출을 제공함으로써 은행 시스템의 안정을 기합니다.

연준의 두 번째 역할은 통화량 관리입니다. 즉 경제 전체의 사정을 고려해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것으로, 이를 담당하는 기구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FOMC)입니다. 

FOMC는 6주마다 워싱턴에 모여  경제 사정을 논의하고 통화정책을 검토합니다. FOMC에는 연준 이사회의 이사 전원(7명)이 당연직으로, 그리고 지구별 연방준비은행장중에서 뽑힌 5명이 선출직으로 참여합니다. 12개 연방준비은행 은행장 전원은 물론 회의에 참석할 권한을 가집니다. 의결권은 이들 중 5명에게만 주어지므로 선출직 의원 자리는 12명이 교대로 맡게 됩니다. 단 뉴욕 연방준비은행장은 예외입니다. 

 

뉴욕은 미국 금융의 중심인 데다 FOMC에서 결정한 통화 정책을 공개 시장 조작(open market operation)을 통해 실제로 집행하는 역할을 담당하므로 FOMC의 당연직 위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연준 의장이 FOMC의 의장직을 당연직으로 맡는 것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관행적으로는 연준 의장이 FOMC 의장을 맡지만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12명의 위원 중에서 해마다 의장을 선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연준은 FOMC의 의사 결정에 따라 통화량을 조절합니다. 흔히 통화량 조절이라고 하면 연준이 인쇄기로 통화를 찍은 후 헬리콥터로 산포한다거나 혹은 진공청소기로 과잉 통화를 쓸어 담는 것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이는 비유로서는 적절할지 모르나 통화량의 실제 조절 방식과는 다릅니다.

통화량의 조절은 주로 공개 시장 조작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공개 시장 조작이란 공개된 금융 시장에서 연준이 미국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사고파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FOMC가 통화량을 늘리고자 한다면, 연준은 금융기관이나 일반으로부터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달러를 추가 공급합니다.

반대로 연준이 통화량을 줄이고자 할 때는 자신이 보유한 국채를 매각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민간이 보유한 통화가 줄게 됩니다. 이처럼 연준의 통화 정책은 통화량 조절이며 이것이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통화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지금까지 이루어진 학계의 합의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은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에 영향을 미치고 단기적으로는 고용 사정과 성장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

 

한국은행('한은')은 정부 수립 후인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법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 중앙은행입니다. 한은의 정책 결정 기구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로, 미국 연준 이사회의 기능과 FOMC의 역할을 통합해 수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금통위는 한은 총재와 부총재 그리고 국민 경제 각 분야를 대표하는 5인 등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합의제로 운영됩니다. 한은총재는 금통위의 의장직을 당연직으로 수행하며 금통위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고 한은의 업무를 총괄하여 대외적으로 한은을 대표합니다. 한은 총재 및 부총재를 포함한 금통위 위원 전원은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한은은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본점 부서 외에 16개의 지역 본부를 두고 있는데, 각 지역 본부는 미국의 분권화된 12개 연방준비은행과 달리 독자적인 권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한은은 중앙 집권적인 조직 체계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은은 물가 관리를 최우선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독립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금통위는 통화량 조절 정책의 지표로 미국 연방 기금 금리의 목표치에 해당하는 한은 기준 금리를 발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