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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생태계의 관점에서 은행업 2부

 

소유 구조의 문제

은행의 소유 구조에 있어서도 수렴화 추세보다는 오히려 다양성의 스펙트럼에 눈길을 끕니다. 영미권 국가에서는 은행도 철저히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민간 기업의 하나라는 전통이 강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은행의 국유화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특정한 사적자본이 은행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특정 재벌이나 펀드가 은행을 소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은행이 갖고 있는 공공적 특성에 비춰 은행 경영에 특정 사적 자본의 이해가 관철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영미계 대형 은행의 경우 주식은 거의 예외 없이 다양한 기관 투자자에게 광범위하게 분산 되어 있습니다. 반면 독일의 대형 상업은행들은 다른 금융 기관들과의 상호 주식 보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국유 은행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지 않고 협동조합의 소유 구조를 도입한 바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은행과 계열사 간의 상호 지분 보유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비영미권 국가에서는 은행의 민영화를 원칙적으로 수용하지만, 국민 경젱,ㅣ 안정을 위해 은행이 매우 중요한 기관이라는 특성을 중시해 은행의 소유 및 지배권을 국내적으로 안정화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4대 은행인 공상은행, 농업은행, 건설은행, 중국은행이 오늘날 세계적인 은행으로 발돋움하고 있는데, 이들 은행은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음에도 여전히 국가가 절대적인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유 은행입니다.

 

한편 우리나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요 은행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소유 지분 비중이 매우 높아졌으며, 심지어 외국계 사모 펀드가 절대지분을 확보하고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외국자본에 의한 국내 은행의 소유와 지배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끓이지 않았으며, 이 정도로 은행의 소유가 무차별적으로 가능하다면 왜 국내 산업 자본(특히 재벌)이 은행을 소유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논란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기업은 어디까지나 은행으로부터 감시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므로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은 감시 체계의 질서상 문제가 있으며, 자칫 은행의 위험과 은행을 소유한 산업 자본의 위험이 중첩되어 국민 경제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산업 자본의 경영력을 투입해 관치의 타성에 젖은 은행을 혁신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금산 분리 페지론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 경제적 차원에서 위험이 가중될 수 있다는 비판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금융의 인프라 중앙은행

 

중앙은행은 한 나라의 통화 제도에서 중심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로는 중앙은행이 왜 중요한 기관인지 잘 와 닿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중앙은행이 없다면 도대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생각해 보는 좋을 것입니다. 만약 지폐를 발행하는 발권 기능을 맡고 있는 중앙은행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은행들이 저마다 은행권을 찍겠다고 나서는 통에 각종 은행권이 난무하면서 통화 질서가 교란될 것입니다. 은행의 경영 상태와 신룃ㅇ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은행권이 상호 교환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고, 은행권에 대한 불신과 통용의 한계로 인해 경제 활동이 크게 제약될 것입니다. 또 각국을 대표하는 통화가 없어 외환 시장이 잘 작동하지 않을 것이며, 그로 인해 국제적인 상거래도 크게 위축될 것입니다. 게다가 은행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수습할 맏형이 없어 한 은행의 위기가 다른 은행의 위기를 부르고, 그것이 금융 중개를 마비시켜 경제 전체가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중앙은행이 없다면 누구도 통화량의 공급에 책임을 질 수 없으므로 경기 변동의 폭도 매우 깊어질 것입니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경기를 회복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중앙은행이 없다면 정부의 재정 적자를 흡수해 줄 곳이 마땅치 않아 정부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중앙은행은 경제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인 통화를 관리하는 기관입니다.

 

통화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

 

일상생활에서 '돈' 이란 말을 무수히 사용합니다. 그런데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다릅니다. "그 사람 돈이 참 많아"라고 말 할때 돈은 부(wealth)를 뜻하며, "그 사람 돈을 잘 벌어." 라고 말할 때 돈은 소득(income)을 뜻합니다. 또 아이들이 "엄마, 돈 좀 줘." 라고 말할 때 돈은 지폐나 동전과 같은 현금 통화(currency)를 뜻합니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이 돈이란 말을 사용할 때 그 의미는 통화량(money supply)입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을 다루는 이번 장에서는 돈이 통화량을 뜻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오늘날 각국에는 고유한 돈(화폐 혹은 통화)이 존재합니다. 미국에는 달러, 일본에는 엔, 중국에는 위한이 있으며, 이들 돈은 각기 한 나라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국가와 통화는 일체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들 통화는 은행들이 자유자재로 찍어 낸 은행권도 아니고 금이나 은으로 바꾸어 준는 태환 통화(convertible currency)도 아닙니다. 이들은 각국이 법화(法貨, fiat money)로 지정해 강제 통용력을 부여한 불태환 통화입니다. 중앙은행은 바로 한 나라의 법화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기관입니다. 다시 말해 법화 로 표시된 통화량을 공급하하고 조절함으로써 경제 활동이 원활하고 안정적으로 진행되도록 지원하는 최하부의 인프라와도 같은 공적 기관입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통화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화폐가 없다면

 

물물 교환의 경제를 생각해 보면 통화가 왜 중요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일을 갖고 있는 자가 이를 생선과 교환하기를 원한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일단 생선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생선을 가진 자가 과일과 교환하기를 원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교환은 성사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통화가 존재하지 않는 물물 교환의 경제에서는 쌍방의 교환욕구가 정확히 일치해야 하는 문제, 다시 말해 '이중의 우연에 의한 욕망의 합치(double coincidence of wants)'가 이뤄져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조건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자급자족 방식에 의존해 궁핍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또 물물 교환의 경제에는 통화라는 공통의 가치 측정 단위가 없어 막대한 거래 비용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1,000개의 물건이 존재한다면, 한 물건의 가치는 공통의 척도가 없기 때문에 999개의 상대 가격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1,000개의 물건이 존재하는 사회에는 1000C2라는 산식에 의해 49만 9,500개의 가격이 만들어진다. 반면에 공통의 통화가 존재할 경우에는 1000개의 물건에 대해 1000개의 가격만이 형성되어 경제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통화가 존재하지 않으면 분업과 교환이 위축됨으로써 경제 발전이 지체됩니다. 분업과 교환이 활발해야 사람들이 하나의 작업에 전념해 숙련된 기능을 쌓고 생산의 질을 높이고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분업과 교환의 원리는 한 나라 내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작동합니다. 농업국과 공업국 간의 분업과 교환, 저부가가치 공업국과 고부가가치 공업국 간의 분업과 교환, 고부가가치 공업국 상호 간의 제품 차별화에 의한 분업과 교환이 활발합니다. 이러한 국경을 넘는 경제 거래는 모두 통화를 매개로 이뤄지며 그 덕분에 세계 경제 전체의 파이가 커지고 각국 경제가 성장하며 개개인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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