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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규제가 줄면 리스크가 는다. 2부-신종 부외 사업의 유혹

 

전통적으로도 부외 사업이 존재했지만, 규제 완화의 물결 속에서 신종 부외 사업도 속속 등장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대출 채권(債權)의 매각입니다. 은행은 원래 자신이 일으킨 대출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면서 신용 위험을 부담했는데, 어느새 대출채권을 매각 처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조성·보유(originate-to-hold)가 목적이었던 대출 채권이 이제 조성·판매(originate-to-distribute)의 대상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처럼 은행들이 스스로 조성한 대출 채권을 매각 처분하게 된 것이 바로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대출에 따른 신용위험을 은행이 직접 부담하지 않아도 되므로 은행이 대출 심사를 꼼꼼하게 실시할 이유가 없게 되었으며, 은행은 그저 대출 건수를 많이 일으켜 중간 마진을 챙기면서 대출 채권을 매각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네거티브 유인이 작용한 결과, 서브프라임(subprime), 즉 '신용도가 매우 낮은 자들'에게 주택 대출이 과도하게 공급되었습니다.

이처럼 조성·판매형 대출은 위험관리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별 은행의 입장에서는 대차대조표에 부담을 주지 않는 매력적인 사업입니다. 대출에 따른 위험을 모두 털어 냈으니 자기 자본을 쌓아야 하는 부담도 없고, 조성한 대출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중간 마진을 취득할 뿐 아니라 조성한 대출의 원리금 상환과 같은 후선 업무를 계속 담당해 짭짤한 수수료 수입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출 채권의 맥각은 은행권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지만, 대출 채권을 조성한 개별 은행에는 아무런 위험 부담도 주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이중성 때문에 대출이 방만하게 이뤄지면서 시스템 리스크를 높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종 부외 활동에는 개별은행의 위험을 잠재적으로 높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가 파생 금융 상품(financial derivatives)입니다. 파생금융 상품은 투자은행의 활약이 두드러진 분야이지만 상업은행들의 참여도 적지 않습니다. 상업은행들은 일찍이 외환 거래를 주선해 왔으므로, 자연스럽게 외환과 관련된 파생상품인 통화 선물, 통화 옵션, 통화 스와프 시장에 트레이더로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또 상업은행은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중·장기로 운영하는 것이 영업의 본질이므로, 그 과정에서 장·단기 금리 차이에 따른 이자율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이자율 위험을 관리한다는 차원에서도 이자율 관련 파생상품인 금리 선물, 금리 옵션, 금리 스와프를 취급해 왔습니다.

 

이러한 파생상품의 트레이딩은 모두 부외 거래로서 은행의 대차대조표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파생상품 포지션에 내재되어 있는 위험을 해지하지 않을 경우 자칫 은행이 막대한 손실을 입어 도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파생상품 트레이딩이 특히 위험한 까닭은 트레이더가 단기간에 거래 포지션을 막대한 규모로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트레이더에게는 위험을 부담함으로써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 유인이 작용합니다. 트레이더는 투기 포지션(speculative position)을 키워 큰 이익이 발생할 경우 높은 연봉과 보너스를 누리게 되는 반면, 전망이 어긋나 큰 손실이 발생할 경우에는 은행이 이를 뒤 감당해주므로 위험에 대해 방만한 태도를 취하기 쉽습니다.

 

 

 

 

 

트레이더들은 왜 적시에 손실을 털어 내지 못하는가?

 

전통적으로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인간을 '경제인(economic man)'으로 상정해 왔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각종 심리적인 편향(psychological bias)에 의해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시장의 가격을 왜곡시킵니다. 이로 인행 "인간은 합리적이다." 라는 현대 사회과학의 기본 가정을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새로이 등장했으며, 금융분야에서는 행동 금융학(behavoral finance)이라는 분파가 만들어져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적인 연구 업적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키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이 이익(gain)과 손실(loss) 앞에서 비대칭적으로 행동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그동안 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위험 회피적(risk-averse)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해 왔는데, 카너먼의 주장은 인간이 이익 앞에서는 위험 회피적이지만 손실 앞에서는 위험 추수적(risk-seeking)으로 바뀌면서 일관성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트레이더들의 형태를 살펴보면 카너먼의 주장이 쉽게 이해됩니다. 트레이더는 자신이 만든 투기 포지션에서 이익이 발생하면 이를 즉각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대로 놔두면 더 큰 이익이 발생할 여지가 있음에도 트레이더들은 당장의 이익 앞에서 리스크를 회피하고자 합니다. 반면 투기 포지션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트레이더들은 이 손실의 실현을 가급적 미루고자 합니다. 그대로 놔두면 더 큰 손실이 발생할 여지가 큰데도 손실이 당장 실현되는 것이 싫어 더 큰 위험을 부담하는 것입니다. 사실 전통적 경제학에서 주장하듯이 트레이더들이 합리적이라면 당장에 이익이 나건 손실이 나건 일관되게 위험 회피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트레이딩이 활발한 금융 기관에서는 트레이더 별로 경험이나 능력에 맞게 포지션 한도(position limit)를 설정하고, 관리 통제 부서에서 이를 수시로 체크해 트레이더들이 과도한 위험을 좇아 조직 전체를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금융 기관 위험 관리의 기본입니다. 그런데도 이 기본이 지켜지지 못해 150년 전통의 베어링 은행(Baring bank)이 무너지는 사태가 1995년에 발생했습니다. 베어링의 싱가포르 지점에는 일본 닛케이 지수 선물을 담당하던 닉 리슨(Nick Leeson)이라는 트레이더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트레이딩 포지션에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계속 포지션에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계속 포지션 규모를 키우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져 베어링을 도산시키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한 명의 트레이더에 의해 어떻게 오랜 전통과 명성을 가진 거대한 조직이 붕괴될 수 있는가에 모두가 경악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매우 간단했습니다. 트레이더를 관리 통제하는 백업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랍게도 리슨은 베어링의 트레딩 업무와 관리 통제 업무까지 모두 본인이 직접 관장하면서 큰 사고를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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