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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경제-은행업은 정보 산업이다.

 

시티 은행의 회장이었던 월터 리스턴(Wather Wriston)은 은행업을 가리켜 정보 산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은행업의 핵심을 짚은 통찰력 있는 발언입니다. 왜 그런가? 은행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IT 기술을 가장 강도 높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ATM이 전국적으로 설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터넷을 활용한 홈뱅킹(home banking), 펌 뱅킹(firm banking)이 널리 확산되어 있습니다. 또 IT가 발전하기 전에는 특수층의 전유물이었던 신용카드가 이제는 일반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두 개씩 보유한 '플라스틱 머니'가 되었고, 그 덕분에 은행(또는 카드 회사), 가맹점, 소비자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면서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cashless society)가 구현되고 있습니다. 그사이 은행이 실행하는 실물 투자의 내용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지점망 확대를 위해 부동산 투자를 늘리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IT 네트워크 확장을 위한 투자가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은행의 정보 산업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ATM

ATM의 등장은 은행 창구 업무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ATM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는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식으로 실용화에 성공한 것은 바클레이스 은행이 1967년 6월 27일 런던 북부 엔필드 타운에 설치한 ATM이 최초였습니다. 

 

은행업을 정보 산업이라고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외견상 은행이 취급하는 것은 돈이지만 돈을 움직이는 것은 설명했듯이 은행은 차입자의 변제 능력을 판단하지 않고는 대출할 수 없는데, 이러한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차입자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보 수집 및 분석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담보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담보가 있다 해서 은행의 정보 업무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담보 물건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정보에 기초하며, 담보 물건의 가치가 수시로 변동하므로 이에 관한 동향 정보 역시 주의 깊게 수집해야 합니다. 또 은행은 대출금 변제가 불가능하게 된 기업에 대해 금융지원을 계속해 경영 정상화를 도모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을 청산해 자금 회수를 서두를 것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업 정리 사태에 대비해서도 은행은 기업의 경영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가계 금융이 비약적으로 확대된 것도 은행의 정보화에 따른 변화입니다. 그동안 가계 금융은 취급 건별로 규모는 작은데 사무 처리 비용이 높아 은행들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던 분야였으나, 이제는 개인 신용 데이터가 축적되고 신용 점수 제도가 정착되어 은행의 주 수익원이 되었습니다. 결국 개인 대출이 손쉽게 이뤄지게 된 것도 모두 IT 기술의 응용에 따른 것입니다. 이제 은행을 가리켜 정보 산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금융 은행업-만기 변환 기능의 빛과 그늘

예금을 통한 지급 결제 기능과 대출을 통한 여신 기능에 이어 은행이 제공하는 세 번째 역할은 변환 기능입니다. 변환 기능이란 유동성(liquidity)을 선호하는 예금자의 니즈(needs)와 수익성을 높이고 싶은 은행의 니즈를 적절히 결합하기 위한 기능입니다. 이 역할은 은행이 예금을 수취해 대출로 전환하는 것에서 가능하게 됩니다. 흔히 어떤 자산의 유동성이 높은지 낮은 지를 판단할 때는 그 자신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높은 비율로 현금화가 가능한가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과 같은 고정 자산은 현금화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시세가 계속 변하므로 장부 가치대로 현금화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반면 정부가 발행한 단기 국채는 시장규모가 워낙 커 수시로 현금화가 가능하며 현 시세대로 매매가 이루어집니다. 바로 이 때문에 사람들은 유동성을 중요시하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가급적 유동성이 높은 형태로 자산을 보유하고자 합니다. 문제는 유동성을 선호할수록 수익성이 훼손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자금을 단기로 운용하면 장기로 운영하는 것에 비해 수시로 현금화할 수는 있어도 수익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유동성과 수익성 간에는 상층(trade-off) 관계가 존재합니다. 자금 운용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급적 장기로 자금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러한 수익성의 추구는 유동성을 확보하고 싶다는 니즈에 반하는 것입니다.

 

은행은 바로 이러한 수익성과 유동성의 상층을 완화하는 기능을 수행해왔습니다. 즉 예금자들이 자유롭게 예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당좌 예금, 보통예금, 저축 예금과 같은 유동성이 높은 저축 수단을 제공하는 한편, 예금 수취로 모집한 자금을 수익성이 높은 곳에 중·장기로 대출하거나 투자하는 식의 변환 기능을 수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대차대조표의 대변(貸邊)에서 단기로 조달한 자금을 차변(借邊)에서 중·장기로 운용하는 만기 변환(maturity transformation) 기능을 수행한 것입니다.

 

※ 대차대조표란 기업이 일정 시점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 현황, 갚아야 할 부채 및 자본 등을 일람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는 재무 보고서로, 손익계산서와 함께 기업 재무제표의 중심을 이룹니다. 일반적으로 차변에는 모든 자산을 기재하고 대변에는 부채 미 자본 사항을 기재합니다. 보통은 결산 시점에 작성하지만 합병이나 폐업 등의 시기에도 작성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처럼 은행에 의해 만기 변환이 가능한 것은 예금자들이 실제로 예금을 인출하는 수요가 한꺼번에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은행은 예금자 전원에게 언제든지 인출해도 좋다고 약속하지만, (큰 수의 법칙에 의해) 전원이 동시에 인출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일부의 자금만을 유동적인 형태로 보유하고 나머지는 중·장기로 운용해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변환 기능은 은행업의 본질적 기능 중의 하나이지만, 이 기능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기도 합니다. 예금자들이 어떤 이유로든 갑자기 불안을 느끼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려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은행의 대출 혹은 투자 자산이 부실화했다는 소문이 나면 예금자들은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으로 몰려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뱅크 런(bank run)'이라 불리는 예금인출 사태입니다. 예금 인출이 쇄도하면 은행은 현금 지급을 위해 보유한 자산을 급하게 헐값에 팔아야 하므로 그 과정에서 막대한 투자 손실이 발생하고 이것이 은행의 자본금을 고갈시켜 급기야 은행이 도산하기도 합니다. 은행의 부채액이 은행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넘어설 경우, 즉 은행의 순자산(net worth, 자산에서 부채를 제한 것)이 마이너스가 될 경우 은행은 지급 불능(insolvency) 사태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뱅크 런은 실제 은행의 부실이 커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부실이 클 것 같다는 추측성 루머, 혹은 부실이 없는데도 날조되어 유포되는 악성 루머에 의해서도 초래될 수 있습니다. 즉 루머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은행은 예금 인출 사태에 몰릴 수 있고 지급 불능 및 도산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말이 씨가 되는 현상을 가리켜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라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한 은행이 악성 루머에 시달리면 다른 은행도 악영향을 받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은행들 간에는 상호 자금거래가 많고 또 고객 기업들도 많이 겹칩니다. 따라서 한 은행이 부실화하면 그 은행과 거래하는 다른 은행들도 덩달아 부실화하기 쉽습니다. 또 위기에 처한 은행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출을 회수하거나 중단할 경우 많은 기업이 자금난에 처라 하게 되고, 이들 기업이 다른 은행에서 빌린 차입금, 즉 이 기업들과 거래하는 다른 은행들의 대출 자산도 동반 부실화함으로써 은행권 전반으로 위기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은행의 위기는 감영 효과(contagion effect)가 매우 높기 때문에 은행 시스템 전체가 위태롭게 되는 총체적 위기, 즉 시스템 위기(systemic crisis)로 비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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